이순호 편집국장[헬스코리아뉴스] 한 제약기업 임직원들이 1년 동안 사회공헌 활동에 무려 3천 시간을 할애했다고 해서 관심을 끈다. 한미약품그룹 임직원들의 이야기다. 1030명이 전국 115곳의 현장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했고, 누적 봉사 시간은 1만 4천 시간을 넘어섰다. 숫자만 놓고 보면 매우 인상적인 성과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시간의 양이 아니라 방식과 지속성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사회공헌(CSR)은 오랫동안 '연말 행사'나 '이미지 관리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회성 기부, 보여주기식 봉사가 반복되면서 CSR은 기업 홍보의 또 다른 이름으로 소비되기 일쑤였다. 이런 점에서 한미그룹이 구축한 임직원 참여형 봉사 플랫폼과 45년째 이어진 헌혈 캠페인은 기존 CSR의 한계를 일정 부분 넘어선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한미그룹의 사회공헌 활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을 했는가'보다 '어떻게 했는가'에 있다. 자체 플랫폼을 통해 임직원이 봉사활동을 선택하고, 평일 봉사·재능 기부·가족 동반 참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의 문턱을 낮췄다는 점은 CSR을 조직 문화의 일부로 흡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봉사가 개인의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일과 삶의 연장선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기존 방식과 결이 다르다.
내용 또한 기업의 정체성과 분리돼 있지 않다. 45년째 이어지고 있는 헌혈 캠페인을 비롯해 소아암 환아 지원, 중증질환 환우 돕기, 의료인 격려 사업 등은 제약기업이라는 본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여기에 지역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목욕 바우처 사업, 환경과 생태계 복원을 결합한 프로젝트, 문화예술 후원까지 더해지면서 사회공헌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단순한 금전 지원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과 상생 구조를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묻고 싶다. 이 같은 사례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이제 수출 100억 달러 시대를 논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과 매출로 경쟁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은 점점 더 엄격해지고 있다. 연구개발 역량과 실적 못지않게 윤리 경영, 사회적 책임, 지속 가능성이 기업 가치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CSR은 더 이상 선택적 미덕이 아니다. 사회로부터 얻은 성과를 어떻게 환원하고, 기업의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균형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는 기업 경영의 본질적 질문이 되고 있다. 일부 기업의 선도적 사회공헌이 '모범 사례'로만 남는다면, 산업 전체의 신뢰를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그 격차는 기업 간 신뢰 수준의 차이로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다.
3천 시간의 봉사는 분명 박수받을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일회성 성과로 기록되지 않고, 기업 문화와 산업 표준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다른 기업들이 이 숫자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왜 가능한지, 우리 조직에는 왜 어려운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이유다.
CSR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홍보가 아니다. 임직원이 주체가 되고, 기업의 정체성과 연결되며, 사회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구조다. 한미의 3천 시간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동시에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이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CSR의 다음 단계는 '얼마나 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