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정치학 박사ㆍ고려대 강사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했던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의 갑작스러운 사임 소식에 국민은 의아하고 어리둥절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4월 26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가장 큰 외교 이벤트가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 국가안보실장이 사라지는 사건이 예삿일은 아니다. 이미 대통령실 외교비서관과 의전비서관 등이 특별한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교체된 직후다. 곧이어 외교안보 정책 수장까지 전격 교체되니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항간에는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나온 혼선과 엇박자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측이 회담 기간 중 특별 문화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우리나라의 K팝 그룹인 블랙핑크와 미국의 가수 레이디 가가가 합동 공연을 하는 내용을 제안했는데 우리 측의 소극적 대응과 무성의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외교부 라인을 통해 뒤늦게 대통령에게 전해졌고 윤석열 대통령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격노했다는 것이다. 언론은 대통령실이 회담 준비와 관련 최소 6차례 보고 누락 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한다.

이 같은 전말을 듣고 있으면 국민은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50년 지기 친구’를 ‘읍참마속’했다고 하는데 다른 건도 아니고 문화행사 관련 보고 누락이 문제가 돼 외교안보 정책 총괄의 목이 날아간다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누적된 국가안보실 내부 알력, 비서실과 안보실, 외교부 간 컨트롤 역량 부재 등이 원인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그동안의 많은 부자연스러운 점이 그 때문이었나 하는 짐작을 하게 한다.

국민은 정부가 국정을 펼쳐가는 데서 ‘국민과의 공감대 형성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이는 최근 한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일련의 사안을 통해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 평가는 31%, 부정 평가는 60%로 조사됐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이 33%, 부정이 60%로 나왔는데 이는 직전 조사인 2주 전보다 긍정 평가는 2%p 내렸고, 부정 평가는 3%p 오른 수치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전반적으로 낮게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의 ‘빅 사건’으로 지지율을 올려도 시원찮을 판에 부정 인식을 더 키운 것이다.

한편 같은 조사에서 현행 주 52시간 근로제 개편과 관련해서도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52%, ‘필요하다’는 응답이 41%로 나왔다. 정부의 중요한 정책이 긍정적으로 수용되기보다 부정적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일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는데, 이른바 일이 몰릴 때는 현행 주 52시간 근무를 유연하게 적용해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언론을 통해 ‘주당 69시간’이라는 워딩이 쏟아져 나갔고, 국민은 주당 52시간과 69시간을 비교하는 착시가 발생했다. 당연히 무슨 소리냐, 과하다는 반발이 거세게 표출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들짝 놀라 정부에 재검토를 지시했다. 주 52시간 근무 유연화는 이미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 문제로서 윤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당선이 되면 시급히 해결하겠다며 내세우고 강조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국민에게는 우리 산업계의 매우 시급한 문제로서 주 52시간 근무 유연화의 필요성이 다가오기보다, 윤석열 정부를 ‘장시간 노동 및 과로’와 그만 오버랩하는 지경이 연출되고 만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아무리 바람직한 정책을 지향해도 일의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부작용과 역풍이 불어 아니한 만 못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현재와 과거를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친다”는 거창하고 멋있는 구호를 내세우며 한일 정상회담 성과를 국민에게 직접 설득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거나, 진즉에 이렇게 국민을 설득했어야지 일을 저질러놓고 뒷수습하려니, 참 좋은 말인데 와닿지 않는다는 냉담이 이어졌다.

곧이어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독도 문제와 일제 강점기 때 강제 동원 문제 등 역사 왜곡을 더욱 개악한 채로 검정 통과하는 사건이 전해졌다. 우리 측의 ‘대승적 결단’이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박진 외교부 장관의 비유에 빗대어, 돌아온 것은 ‘뒤통수’고, ‘물컵의 반’이 ‘역사 왜곡’으로 채워졌다는 냉소가 나왔다.

국가안보실장의 전격 교체에 외교안보 공백이 발생하지 않을지 국민은 걱정한다. 이에 대해 추호의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차제에 윤석열 대통령이 더욱더 대대적인 개편과 쇄신을 단행해야 하지 않나 하는 목소리도 크다. 국정이 기획되고 조정되며, 주요한 국정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사전에 수렴하려는 민주적 의사소통 절차, 정책이나 성과가 국민에게 바르고 원활하게 전달되는 정교한 과정 등이 계속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것에 대수술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국정에 대한 정무적 판단 및 감각, 상황 판단 등도 계속 의심을 낳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부자연스러움과 불편함, 심지어 불쾌감을 계속 무시하기만 할 건지 참 궁금하다. 이런 상황이 누적되면 이제는 정부의 ‘노력의 부족’이 아니라 ‘철학의 부재’라는 더욱 심각한 문제 제기가 따르는 게 통상의 순서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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