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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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이제 소리 있는 아우성이 됐고 순수예술이나 대중예술 나아가 상업예술이나 독립예술을 막론하고 코로나19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관련 예술가들이나 스텝의 생계는 물론이고 문화예술 생태계 붕괴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영화도 그렇지만 공연장에서 감염된 사례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혹한 방역 조치 때문에 어려움이 극심하다는 주장은 작년부터 표출돼 왔다. 다만 잠재적 위험이 있다면 그간 통제책을 유지해야 하겠지만 그 전제는 과학적 연구에 따른 근거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근거 마련에 연구지원도 없다. 우리나라에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해외 사례를 살펴야 한다.

지난해 10월 독일 할레의과대학 연구팀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실내 콘서트를 열고 감염병 확산 비교 연구를 했다. 1400명이 참여한 실험에서 심지어 24명의 감염자가 참여했다. 결론은 관객들이 자기 자리에 앉고 마스크를 잘 쓰며, 환기시스템을 잘 운영하면 감염 확산이 일어나지 않았다. 음식물도 먹을 수 있는데 다만 앉은 자리에서만 취식해도 된다. 다만, 관객이 드나드는 출입구를 많이 만들수록 감염의 위험이 적었다.

올해 1월, 독일 프라운호퍼 하인리히 헤르츠 연구소(FHHI)가 콘체르트하우스 도르트문트에서 한 실험에서도 한 칸씩 좌석을 띄우고 환기시스템을 잘 작동시키면 감염 위험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20분마다 중앙환기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지그재그로 한 칸씩 띄어 앉기를 하면 에어로졸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실험에 사용되는 마네킹은 인간보다 4배나 많은 에어로졸을 뿜었다. 연구진은 1550석을 모두 채워도 감염 확률이 낮지만, 이동 경로와 로비 접촉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절반만 채워야 한다고 봤다. 또한, 공통적으로 고정적인 자리가 아닌 스탠딩 공연은 위험했다. 일본 NHK와 보건 전문가들의 실험을 보면 손바닥에 기침을 한 경우 30분 내에 뷔페 공간 집기는 물론이고, 그 안에 있던 전부를 감염시켰다. 그만큼 이동을 하면서 공용물건을 접촉하는 것은 위험하다. 공연장에서는 오로지 관람 그 자체에 집중하고, 접촉을 억제해야 한다.

애초에 우리나라에서는 두 자리씩 띄어 앉기를 방역수칙으로 정했다. 사실상 들어갈 수 없는 공연장이 거의 대부분이 됐다. 이에 항의가 계속 이뤄지자, 당국은 최근 2m거리 두기로 바꿨다. 하지만 한 좌석 건너 앉기는 아닌 것이다. 사실은 중소 공연장에서는 공연 금지나 다름이 없다고 할만하다. ‘보몰(Baumol)의 법칙’을 애써 꺼내지 않아도 공연은 비용이 들고 일정한 관객이 있어야 운영이 가능하다. 코로나19의 장기 상황에서 지금 같은 공연장 방역수칙 유지는 한계다. 때문에, 무엇보다 적정 인원수 등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에 지원이 필요했다.

독일 할레의과대학 연구팀은 관련 연구에 작센안할트 주정부 등으로부터 99만 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13억원을 지원받았다. 우리 정부나 지자체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의학적 개념이 아닌 사회문화 개념이 강한 사회적 거리 2m만 고수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앞의 실험 내용에 따라 지난해 10월 박물관과 극장 등 실내시설 환기시스템 개선 예산 5억 8000만 달러(약 6580억원)를 지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공연장의 환기 시설에 대한 지원 논의도 없다. 이제라도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해 방역수칙을 성립시켜야 한다. 그것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책적 저항을 줄이는 방법이다. 늦었다고 할 때 빠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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