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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 구멍의 계통수
 
이광찬 시인   기사입력  2023/03/30 [18:04]

 수 세기 동안 밤은 어둠을 낭비했다 바다는 파도를 낭비하고, 시계는 틈틈이 시간을 낭비했다 낭비하고 낭비하고, 분비하고 분비하고, 내 불알 밑은 점점 부실한 정자들로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오늘 나는 20년 넘게 부어온 적금을 깼다 한 여자를 위해 그러므로 마이너스 통장 잔고에 구멍을 내는 0은 부실한 정자가 건실한 난자를 만나는 원 스톱 대출 경로인 셈이다 

 

 달거리는 이제 더 이상 여자만 누리는 사치가 아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나는 가까운 정자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한다 종족본능은 애당초 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곳적부터 우리는 로또 같은 확률로 도박을 했는지 모른다 모든 구멍과 부실은 여자와 한통속이다 불임은 어느 낭비벽이 심한 구멍의 비참한 말로이다

 

 어둠이 낭비하고 있는 구멍 속에는, 권총이 난사한 총알 자국이 여러 개 박혀 있다 죽음을 낭비한 자들의 삶 속에도 이런 문양이 새겨져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여명은, 밤이 어둠을 몽땅 탕진했을 때 받는 개평 같은 것이다 

 


 

 

▲ 이광찬 시인     ©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지나고 보니 알겠다. 내 청춘은 불행의 종잣돈이었음을. 패기와 열정을 밑천 삼아 벌인 광기의 도박판이었음을. 아니라고, 박박 우겨도 보고 아닐 거야,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보기도 하지만, 남은 건 숭숭 뚫린 구멍뿐. 사랑이라고 다를까. 하긴 그 밖의 뭐든. 마저 남은 손목을 걸어야 하나, 잘라야 하나.  

 

 

 

 

 

이광찬

 

2009년 계간 <서시> 시 부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2022년 제9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수상. 

<다층>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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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3/30 [18:04]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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