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33]
                              '산장에서'                  

                             심  옥 배

                       여름밤 깊어가는
                      지리산 세석고원

                      거림산장 안주인이
                      들려준 이무기에

                      쿰쿰한
                      이불 꼭 쥐고
                      잠 청해도 귀밝다.

                      골짜기 폭포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쏟아낼 속내들이
                      저토록 많았던가

                      그 속내
                      헤아리다가
                      이 밤을 다 새겠네.

                      까아만 밤하늘에
                      별들이 쏟아진다

                      애착이며 공허함이
                      詩가 되어 흐르는 밤

                      숨가삐
                      달려온 일상
                      쉼표 하나 찍는다.
                      
◎한류와 시조
 단풍은 절정에 이르고 가을이 깊어 간다. 좋은 계절이련만 코로나 19라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소소한 일상이 그립다. 예전 같으면 다들 한 두 차례 단풍 나들이에 나서기라도 했을 텐데 비대면 가상공간이 필연의 무대가 되었으니 사람이 그립게 되었다. 지난날 가을 행락에 누구든지 마이크를 잡으면 삼행시를 어렵지 않게 창작했다.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민족이기에 풍류를 알고 즐겼기 때문이다.
 오
늘날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한류는 그냥 생겨난 게 아니다. 한류는 1990년 말부터 일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의 열기를 말한다. 이후 한류의 열풍은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를 거쳐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2000년 이후에는 가전제품 등 한국관련 제품의 이상적인 선호 현상까지 나타났는데, 포괄적인 의미에서 한류는 이러한 모든 현상까지 일컫고 있다. 한류를 얘기할 때 인문학적 바탕인 ‘시조’를 빼고 얘기하기 힘들다. K팝의 운율이 시조의 운율과 닮아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런 시조 이련만 오늘날 시조는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이웃나라 일본의 하이꾸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하이꾸에 국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전역에 20만이 넘는 하이꾸 창작 단체가 있다. 국가적인 대회도 있다. 하이꾸에 대한 사랑은 외국에까지 알려지고 홍보를 하여 외국인도 흥미를 느끼고 창작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하이꾸를 필수과목으로 이수하게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이꾸는 이제 세계적인 문학 장르가 되었다.우리 시조는 하이꾸에 비하면 초라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국가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자치 어디에도 시조를 옳게 대하고 지원하는 곳이 없다.

 우리는 토종이니 재래니 하는 말에는 낙후나 후진성이란 의미가 내포되기 때문에 우리 것은 낡고 뒤떨어진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엽전은 안돼” 라는 말은 대표적인 자기비하 표현이다. 엽전은 고려시대부터 일본 강점기까지 통용된 화폐이다. 엽전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가치를 잃게 되었고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일본을 본토라 하고 일본인을 본토인이라 부르고 한국인을 반도인 이라 하여 엽전 조센징이라 불렀다.반도는 자원이 빈약한 곳, 반도는 더럽다는 교육을 받았고 그 교육에 젖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스스로를 “엽전은 안돼”라는 소리를 되 뇌이었다.

 우리의 전통 의(衣) 식(食) 주(住)는 한복(韓服), 한식(韓食), 한옥(韓屋)이라 부른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옷, 밥, 집이란 보통명사로 불러야할 우리 문물들의 이름은 앞에 한(韓)자를 혹처럼 붙인 특별명사로 바뀌었다. 양약이나 양의사는 그냥 약(藥) 의사(醫師)인데 우리 약과 의사는 한약(韓藥) 한의사(韓醫師)이다. 우리 소는(韓牛), 우리 과자는 한과(韓菓)라고 불린다. 마치 주인이 거리로 쫓겨나고 떠돌이로 들어온 나그네가 대문에 자기이름을 문패로 걸고 안방을 차지한 격이다.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가 1987년 미 국무성 산하 USIA 국제창작프로그램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에 교환교수로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이야기다. 미국 대학생들에게 한국 자유시에 대하여 얘기를 하니 분위기가 산만해지고 시큰둥하더란다. 한국 어떤 문학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더니 황진이의 시조를 얘기하니 눈이 휘둥그레지더란다. 그러면서 묻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당신 나라는 독자적으로 쓰는 언어가 있느냐. 당신은 시조를 쓸 줄 아느냐. 시조를 듣고 나서 느껴지는 운율의 묘미를 통해 한국 문화를 이해하게 됐다고 하드란다. 그는 문득 민족문학으로서 시조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어느 문학잡지에서 토로했다. 이때부터 시조를 쓰기 시작하여 〈춘설〉 〈너와 나 한 생이 또한 이와 같지 않더냐〉 2권의 시조집을 냈다.
 다음은 그의 첫 시조집 〈춘설〉에 실린 시조 작품이다

       사립문 열어둔 채 주인은 어디갔나
       산기슭 외딴 마을 텅빈 오두막집
       널어논 흰빨래들만 봄 햇살을 즐긴다.

       추위 물러가자 주인은 마실가고
       벚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꽃 폈는데
       뒷산의 멧비둘기 울음만 마당가득 쌓인다.
                                  - 오세영 〈봄날〉 전문
      
 오세영 시인은 학술서적으로 「시론」 「한국현대시인연구」등 수 십 권을 펴냈고, 청마의 출생지가 거제임을 주장하는 몇 안 되는 국문학자중 한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는 시조를 이류문학으로 폄하하고 업신여기고 있다. 교과서에서도 아주 당당하게 시조를 삭제했다. 그래놓곤 자랑스럽게 한류를 말하고 있다. 인기몰이로 한류로 인한 경제적인 이득추구가 전부인줄 알고 있다. 한류 뒤에 숨어있는 한국인의 정신적인 지주인 시조를 이들이 안다면 한국을 더욱 매력적인 나라로 알지 않겠는가. 시조는 세계인이 놀라워하는 음률을 지녔기에 더욱 그러하다.우리는 언제부턴가 지구촌이니 세계화란 말에 솔깃해 있다. 세계화라는 것은 강자 독식의 문호를 개방하는 일이다. 약자일수록 내 것을 귀히 가꾸고 높이지 않으면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시조 또한 세계적인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산장에서〉는 심옥배 시인의 작품으로 3수 연작의 서정시조인데 지리산 세석고원(細石高原)에서의 여름밤 심사를 읊었다.

첫째 수에선 거림 산장에서 쉬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시인을 본다. / 여름밤 깊어가는 지리산 세석고원 /에서 /거림산장 안주인이 / 밤 나들이를 하려는 시인에게 이무기 얘기를 들려주며 잠자리에 들기를 권했다. 무서움에 / 쿰쿰한 이불 꼭 쥐고 / 몇차례나 잠을 청하건만 잠은커녕 귀만 밝아온다. / 잠 청해도 귀밝다./ 는 결구가 신선하다.

둘째 수에선 밝아진 귀에 들리는 건 쉼 없는 폭포소리다. / 골짜기 폭포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 쏟아지고 있다. 쏟아도 쏟아도 / 쏟아낼 속내들이 저토록 많았던가/. 그래서 외로울 틈도 없었나 보다. / 그 속내 헤아리다가 이 밤을 다 새겠네./ ‘잠청해도 귀 밝다’ 는 첫째 수 종장과의 연결이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진다.

셋째 수에선 세석고원에서의 하룻밤, 영혼이 맑아진 시인이다. / 까아만 밤하늘에 별들이 쏟아진다 /는 그 표현은 독자들에게 세석고원의 아름다움을 한 아름 안겨주고 있다. / 애착이며 공허함이 詩가 되어 흐르는 밤 /이다. 어찌 명상에 잠기지 않겠는가./ 숨가삐 달려온 일상 쉼표 하나 찍는다./고 종장을 마무리 했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다. 그 여유로움이라니.

코로나 19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로 시인은 지난여름 사람들을 피하여 세석고원을 찾은 모양이다. 세석(細石)은 잔돌이다. 그래서 ‘잔돌고원’ 이었는데 한자 표현으로 細石高原으로 불리고 있다. 세석평전(細石平田)이라고도 하는데 平田이 일본식 표기라서 세석고원으로 불린다.
  세석고원은 남녘의 개마고원으로 부를 정도로 지리산에서 가장 특이한 지형을 나타내는 고원지대다. 넓이가 약 30만평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넓은 고원으로 신라 때에는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세석척촉(細石躑躅)은 지리산 십경(智異山 十景)의 하나다. 척촉은 철쭉이다. 그 철쭉이 만개할 때면 그 화려함으로 세석고원은 별천지가 된다.
 ‘관부연락선’의 작가 하동 사람 이병주(李炳注 : 1921~1992)는 「山을 생각한다」에서 세석철쭉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표현하여 세석 철쭉의 성과를 높혔다.
 깊은 밤, 폭포소리에 잠 못 들어본 사람은 안다. 그 물소리가 어떠한지, 살다보면 속내를 시원하게 쏟아내고 싶은 때가 있지 않던 가배. 시인은 폭포의 쏟아지는 물소리를 두고 / 쏟아낼 속내들이 저토록 많았던가 / 하고 멋 떨어지게 읊고 있다. /그 속내 헤아리다가 이 밤 다 새겠네. / 라고 물소리에 잠 못 드는 심사를 곡진하게 표현하고 있다.
 비류직하 삼천척 (飛流直下 三千尺)이란 상투어가 있다. 이어령 선생은 〈폭포와 분수〉 라는 글에서 동양인은 폭포를 좋아하고 서양인은 분수를 좋아한다고 했다. 폭포는 자연이 만든 물줄기이고, 분수는 인공적인 힘으로 만든 물줄기이다. 그래서 폭포는 심산유곡에 가야 볼 수 있고 분수는 도시의 가장 변화한 곳에 가야 구경 할 수 있다. 하나는 숨어있고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 있다고 하면서 폭포수는 자연의 물이요, 분수는 문명의 물이라 했다.
 물만 그러할까. 산을 두고도 동서양은 달랐다.
 산행(山行)을 우리는 入山이라 했다. 산의 품으로 든다는 뜻이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서 산과는 서로 수평관계에 있다고 보아 입산이라 했다. 그러나 등산(登山)은 정복을 의미하는 서양 정서다. 입산은 자연과의 합일이고 친화이지만 등산은 정복과 지배의 개념이다. 우리의 옛 선비들은 폭포가 있는 곳에 정자를 짓고 자연을 노래할 때 서양 사람들은 분수를 만들고 투기(鬪技)를 즐겼다.
 도회에선 별을 볼 수 없다. 황사와 스모그, 미세먼지 따위로 하늘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세석고원에서는 별들이 쏟아진다. 쏟아진 별을 바라보는 정화된 마음일지니 애착이며 공허함이 무슨 소용이리오. 하나 같이 詩가 되어 흐른다. 숨가삐 달려온 일상이 아니던가. 그 일상에 쉼표하나 찍은 시인, 그 시인의 초롱한 눈매가 생각난다. 세상을 밝게 보는 눈일지니,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면 오죽 좋겠는가.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를 자주 흥얼거리는 요즈음이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