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정년퇴직 때문에 화가 나요

정년퇴직이 얼마 안 남았다. 지나온 세월이 생각나면서 눈물이 난다. 화가 치민다. 예정된 것이었는데도 왜 이리 당혹스러운지 모르겠다. 

운동경기처럼 꼭 체력이 중요한 것도 아닌데 왜 나이 들면 회사를 떠나야 할까? 지식과 경륜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오히려 나이 든 사람이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데 말이다.

60세면 가장 왕성하게 일할 때 아닌가.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 밖으로 쫒아 내다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인위적인 연령정년 따위는 없애고 모두에게 일할 자유를 부여했으면 좋겠다. 

일할 의사가 있고 일할 능력이 있는 노년은 일하게 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노년이 세상에 기여할 기회를 박탈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 들었다고 직장에서 쫒아내는 것은 분명 연령차별이다.

△인생 여정은 방향전환의 과정...긍정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수용하자

60줄에 접어든 직장인들 모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년퇴직이다. 빚, 질병, 이혼, 사망 이런 것들은 보편적 위험이 아니다. 젊었을 때는 현직의 업무부담 때문에 은퇴가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정년이 다가오면 달라진다. 지는 꽃처럼 자신이 비참하게 여겨지고, 속박을 벗어나는 자유보다는 무언가 미련이 남는다. 진정 정년퇴직을 반기는 사람은 드물다. 

정년에 의한 강제퇴직이 가장 불합리한 것은 연령에 의한 고용차별이다. 다행히 전 세계적으로 정년제도는 폐지 수순을 밟아가고 있으며, 가까운 장래에 우리나라도 폐지될 걸로 본다. 그러나 당장 폐지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폐지된다고 해서 평생 현역으로 있을 수도 없다. 

자! 그런데 정년퇴직이 왜 두려울까? 회사를 떠나면서 앞날이 걱정되니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퇴직이란 끝이 아니라 한 단계의 졸업이고 또 다른 시작이다. 방향전환의 과정이고 물결처럼 굽이치는 인생의 연속이다. 퇴직 후의 또 다른 의미 있는 삶을 생각한다면 퇴직이 결코 두려움만은 아닐 것이다.

퇴직이란 익숙한 과거에서 불확실한 미래로 건너뛰는 큰 사건이다. 서커스의 공중그네 뛰기에서 먼저 있던 그네를 놓고 다음 그네를 잡기 위해 날아가는 그 숨 막히는 순간과 비슷하다. 이때의 주저와 불안은 굉장하다. 심리적 불안이 고조되어 공황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잘 견뎌내자.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만 본래 일탈하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신경증 환자같이 행동의 영역을 제한하여 세상과의 접촉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라이프 스타일은 일정한 삶의 방식을 유지함으로써 생긴 것에 불과하다. 퇴직 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가면 된다.

정년퇴직은 새로운 생애단계로 넘어가는 큰 사건이다. 현역에서 은퇴기로, 중년기에서 노년기로 건너가는 변곡점이다. 조급한 마음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인생의 전환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인생에서 모처럼 안식년을 갖는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안식년은 새로운 성장을 위한 발판이다. 다음 장면을 준비하기 위해 무대의 막을 내리는 기간이기도 하다. 이제 무대 뒤에서 조용히 시작 사인을 기다리면서 내 인생에 어떤 새로운 성장이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자기점검과 기분전환을 위한 여행을 하면 도움이 된다.

나도 정년을 맞이할 때 화가 나고 두려움 또한 컸다. 그런데 퇴직을 하고 몇 년을 지내보니 퇴직 후의 세상도 살 만하다. 나만의 색깔과 향기로 살 수 있는 삶이 얼마나 멋지고 보람된 삶인가. 생각을 바꾸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을뿐더러 무한한 자유와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면 세상이 무한대로 넓어진다. 

슬픔과 우울의 장벽에 갇혀 그 색깔을 마음껏 표출하지 못하고 그냥 삭아버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부디 정년 때문에 아름다운 인생 후반을 망치지 말자. 고치를 엮지 않는 애벌레는 나비가 될 수 없듯이 긍정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수용하지 않으면 성공적인 노년기를 맞이할 수 없다. 정년퇴직은 인생에서 은퇴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퇴직은 100세에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