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틀을 깨고 뒤집어 보기

이태상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역병()으로 온 지구촌이 유령 마을 (Ghost Town)로 변해 사람들의 사회활동이 거의 멈추고 집안에 격리되다 보니 옛날 우리 조상 원시인들이 동굴 속에 살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만 같다.

 

그때는 몸 성한 남자들은 산과 들로 사냥 나가고 여자들은 먹을 식량을 위해 밭농사나 열매 채집하러 외출하면 동굴 속에 남아있는 병약자(病弱者)들은 무료(無聊)함을 달래느라 동굴 벽에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새겼다지만, 이제 현대인들도 그동안 외부 바깥세상으로만 팔던 정신을 내면으로 돌려 각자 우주 속의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의를 성찰해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아니랴.

 

왜 그렇게 사니? 미련 곰탱아

 

2015625일자 한국일보 오피니언 페이지 좌측 하단에 실린 사진 한 장 속 입석조형물에 붙어 있는 포스터 같은 문구였다. 그 앞엔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땅바닥에 돗자리 같은 매트를 깔고 뭔가가 담긴 검은 비닐 주머니들 사이에 비스듬하게 앉아 앞에는 큰 함지박에 여러 가지 떡을 놓고 있다. 그 바로 옆엔 벗어 놓은 슬리퍼 같은 신발 한 켤레가 놓여 있는데, 이 사진 밑에 아주머니, 자리 잘못 잡으신 듯이란 사진 설명 캡션(caption)을 류효진 멀티미디어부 기자가 달아 논 것이었다.

 

이 문구 '왜 그렇게 사니? 미련 곰탱아'를 이제 와선 이렇게 좀 바꿔봐야 하리라. '그동안 왜 그렇게 살았니? 미련 곰탱아'

 

우리 모두 단군 할아버지와 곰 할머니의 후손이라면 이와 같은 지탄을 받아 마땅하리라. 예부터 '()'라 하는 것은 도가 아니고 '진리'라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하듯이, '정도(正道)'도 없고 '공식(公式)'이란 것도 공식이 되는 순간 더 이상 공식이 될 수 없으리라.

 

자기 몸의 건강상태를 스스로 측정할 수 있는 자가 건강 측정기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자 애플부터 마이크로소프트까지 공룡기업들이 시계처럼 손목에 찰 수 있는 '웨어러블(wearable)'이라는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 시장의 최강자는 2007년 설립된 '핏빗(Fitbit)'이라는 소기업이다. 핏빗의 현 웨어러블 시장 점유율은 85%로 한 해 2,600만대 이상의 판매량을 올리고 있다. 따라서 이 회사 창업주인 한인 제임스 박(James Park 1977 - )을 하루아침에 보유주식 6.6억 달러의 억만장자로 만들어줬다.

 

미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나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마찬가지로 제임스 박도 하버드를 중퇴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미 컴퓨터 업계의 3인자로 오라클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 역시 대학 중퇴자다. 이들 모두가 대학이란 박스에 들어갔다가 그 틀을 박차고 나온 사람들이다.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2015년 한국일보 연예스포츠 양승준 기자가 '후회 없이 노래, 나홀로 무대서 눈물. 기획형 아이돌의 그림자'란 기사에서 지적한 아이러니가 있다.

 

', 나 왜 울지?' MBC '일밤ㅡ복면가왕'에서 두 번이나 가왕을 차지한 그룹 에프엑스 멤버 루나는 좋은 노래 들려줘 고맙다는 심사위원의 말에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가면을 벗은 루나는 (이 무대에서는)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주목받을 기회가 많은 아이돌이 6주 동안이나 얼굴을 가린 채 노래를 하고 후회 없이 노래 불렀다며 울다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복면가왕'은 웃음 뒤에 가요계 '기획형 아이돌'의 그림자를 내비친다. 노래 실력을 인정받아 기획사에 발탁되고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기획사가 그룹의 색깔과 앨범의 콘셉트를 정하고, 여기에 조립하듯 가수를 끼워 맞추다 보니 노래가 '대박'이 나도 가수들에겐 '내 노래'로 남지 않는다. 아이돌 음악을 두고 '공장에서 찍어 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날짜 한국일보 연예스포츠에 이재훈 기자가 소개한 호주 싱어송라이터 렌카(Lenka Kripac 1978 - )의 새 앨범 '더 브라이트 사이드(The Bright Side)'의 타이틀곡 '유니크 (Unique)'는 평소 자신이 행복해야 음악적인 결과를 보장 받는다고 믿는 렌카의 음악 철학에 맞는 작업 방식으로 탄생했고 시종일관 듣는 이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 밖에 화사하고 밝은 분위기의 '프리(Free),' 이미 싱글로 공개된 '고 디퍼(Go Deeper)''블루 스카이스(Blue Skies)' 등 렌카의 인장이 박힌 밝고 행복한 노래로 가득하단다.

 

또 한편 영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진보주의적 일간지라 할 수 있는 '더 가디언(The Guardian)'은 얼마 전 한류 그룹 '투애니원(2NE1)' 멤버 씨엘을 집중 조명하면서 기존 스타일 틀에서 벗어난 그녀의 '우주적이고 몽환적인' 비트를 극찬했다.

 

앞서 언급한 렌카의 노래 제목들처럼 우리 모두 각자가 전무후무(前無後無)하고 유일무이(唯一無二)하게 이 세상에 태어난 '유니크'한 존재들이라면 모든 틀을 깨고 벗어나 우리 내면의 우주 속으로 깊이 들어가 아름다운 코스모스의 푸른 창공 '블루 스카이스'로 자유롭게 날아볼거나. 국가와 민족, 인종과 성별, 종교와 이념, 직업과 계층, 또는 학벌이나 지방색, 심지어는 가족이라는 인연의 사슬까지도 끊어, 모든 틀을 다 깨부수고 말이어라.

 

어쩜 이것이 바로 현재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주는 엄중한 지상명령 '사회적인 거리 두기 (멀리하기)'의 최후통첩 (ULTIMATUM)이라는 숨은 메시지(Hidden Message)이리라.

 

2015년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이 있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 '니모를 찾아서,' '월ㅡE,' '' 등 걸작 애니메이션을 만든 픽사의 작품으로, 2009''으로 노인의 이루지 못한 꿈과 소년의 부푸는 꿈을 수천 개의 풍선을 달고 날아다니는 집으로 형상화해 극찬을 받은 피터 닥터(Peter Hans Docter 1968 - ) 감독이 연출한 것이다.

 

"제 딸이 11살 때였어요. 굉장히 엉뚱하고, 창의적이며, 쾌활한 성격의 아이였는데 이 아이가 갑자기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로 바뀌더라고요. 그때 생각한 거죠. 내 딸의 머릿속에 어떤 변화가 생긴 걸까 하고요. '인사이드 아웃'은 이런 감정들(내 아이 머릿속/ 가슴속 감정들을) 의인화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2015626일 서울 성동구 한 극장에서 열린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사람들이 감정을 공유하고, 관계를 쌓아가면서 더 풍성해지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힌 닥터 감독의 말이다.

 

이 영화에서 다룬 기쁨, 슬픔, 분노, 반항, 경계심, 5가지 감정 중에서도 특히 '슬픔'의 중요성을 그는 강조했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 슬픔은 인간이 서로에게 의지하게 하며 공동체 의식을 살아나게 하는 감정이다"란 설명이었다.

 

우리 뇌가 과거 기억을 편집한다고 하듯이 우리가 감지하는 '현실'이란 것도 편집되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선별해서 우리가 감지하게 되는 현실을 편집할 수 있지 않을까. 몇 년 전 표절 시비에 휘말린 신경숙 작가는 필사(筆寫)로 문학수업을 했다는데, 2015년에 출간된 고두현 시인의 '마음 필사'란 책이 있다.

 

잡다한 감정 중에서 어떤 감정에 집중하는가에 따라 우리 각자의 현실도 달라지는 것이리라. 예를 들어 여름 바캉스 계절을 맞아 시원한 바닷가나 경치 좋은 산장으로 휴가를 간다고 하자. 가는 길에 또는 행선지에 도착해서 유쾌한 일도 불쾌한 일도 겪게 되겠지만 어떤 일에 마음 쓰느냐에 따라 우리 여행 자체가 즐겁거나 그렇지 못한 것이 될 수 있다. 우리 '마음 필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현실'을 편집하게 되는 것이리라.

 

우리 생각 좀 해보면 모든 것이 대조적이고 상대적이 아닌가. 어둠이 있어 빛이 있고, 슬픔이 있어 기쁨이 있으며 죽음이 있어 삶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전자(前者)에 집착할 때 '지옥'이 되고 후자(後者)에 치중할 때 '천당'이 되는 것이리.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30 11:34 수정 2020.09.14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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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