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엄마 뱃속에서 암을 함께 안게 된 일란성 쌍둥이 자매의 비극이 유전체 분석으로 밝혀졌다. 한 아이에게서 시작된 암세포가 태반을 거쳐 다른 아이에게 옮겨갔고, 자매는 태어난 지 석 달도 되기 전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처음 이상이 발견된 곳은 한 아이의 얼굴이었다. 임신 중 검사에서 확인된 종양이 커지자 의료진은 임신 34주에 제왕절개로 아이들을 꺼냈다. 그런데 다른 아이의 몸에서도 암이 발견됐다. 이들은 특이한 유전자 융합(MN1::ZNF341)으로 인해 발생하는 연조직암인 미분화 육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 아이는 생후 12일, 다른 아이는 9주 만에 숨졌다.
영국 웰컴 생어 연구소(Wellcome Sanger Institute)와 그레이트 오먼드 스트리트 어린이병원(Great Ormond Street Hospital) 연구팀은 이런 내용의 연구결과를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했다.
쌍둥이 자매의 종양과 정상조직, 태반의 유전체를 비교한 연구 자료. 두 아이의 종양에서 한 아이에게서 유래한 유전적 흔적이 확인됐다. [자료=Nature Communications]연구진은 자매에게 같은 암이 생긴 경위를 추적했다. 두 아이에게 암이 각각 발생했는지, 한 아이의 암세포가 다른 아이에게 옮겨갔는지를 밝히는 것이 핵심이었다.
자매의 병세는 태어날 때부터 심각했다. 얼굴에 종양이 있던 아이는 왼쪽 얼굴과 눈 주위의 큰 종괴가 뼈와 뇌를 둘러싼 경막까지 침범했고, 간과 피부 아래에도 병변이 퍼져 있었다. 생후 9주 만에 숨진 다른 아이 역시 간과 피부 아래에서 여러 병변이 발견됐다. 이후 뇌와 뇌막으로 병이 번졌고, 항암치료를 받고도 끝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진료 경과는 같은 병원 연구진이 별도로 발표한 '피디어트릭 블러드 앤드 캔서(Pediatric Blood & Cancer)' 논문에 기록돼 있다.
암이 지나간 길을 찾는 단서는 세포가 분열하며 DNA에 남긴 미세한 변이였다. 일란성 쌍둥이는 하나의 수정란에서 출발하지만,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각 세포에 새로운 변이가 쌓인다.
연구진은 두 아이에게서 각각 정상조직 표본 6개씩과 태반 표본 11개 등 총 23개의 정상 표본과 종양 표본 10개를 채취했다. 종양 표본은 얼굴에 종양이 먼저 발견된 아이에게서 8개, 다른 아이에게서 2개를 확보했다. 그런 다음 모든 표본에 고해상도 전장 유전체 분석을 수행하고, RNA 서열 분석을 통해 육종을 일으키는 'MN1::ZNF341' 유전자 융합을 확인했다.
이어 종양에서 발견된 변이 212개를 공유 양상에 따라 13개 집단으로 나누고, 여러 부위의 암세포에 공통으로 남은 변이와 특정 부위에서만 나타난 변이를 대조해, 암세포가 어떤 순서로 갈라지고 퍼졌는지, 그 계보를 재구성했다.
그 결과 두 아이의 종양은 한 아이의 세포에서 시작된 공통 계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두 아이에게서 채취한 모든 종양 표본에서 얼굴에 종양이 먼저 발견된 아이에게 고유한 유전적 흔적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암이 한 아이에게서 발생한 뒤 태반을 거쳐 다른 아이에게 전파됐다고 결론지었다. 분석 결과 암세포는 두 아이 사이를 한 차례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쌍둥이 사이의 태내 암 전파는 백혈병 등에서 보고돼 왔으며, 이번처럼 고형암이 다른 태아에게 옮겨간 사례는 극히 드물다. 자매의 진료 경과를 보고한 연구진은 태반 자체에서는 전이 병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태반에 종양 덩어리가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세포 속 유전적 흔적이 암의 이동 경로를 드러낸 셈이다.
유전체 분석은 자매가 만들어진 초기 발생 과정도 비췄다. 연구진은 초기 배아의 세포 계보가 두 아이와 태반을 형성하는 데 서로 다른 비중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암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간 DNA 속에 하나의 수정란이 두 생명으로 자라난 기록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자매의 이름은 아멜리아(Amelia)와 아마야(Amaya)다. 연구진은 논문에 올린 글에서 연구에 참여한 가족에게 감사를 표하고, 어머니의 뜻에 따라 두 아이의 이름을 남겼다. 이번 연구는 짧은 생을 살다 간 두 자매에게 헌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