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브롱크스의 James J. Peters VA Medical Center 전경. 미국에서 병원과 의사그룹의 인수·통합 이후 진료비 상승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미국 재향군인부(VA)][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미국은 의료비가 비싼 나라로 유명하다. 동일한 진료를 받아도 경우에 따라 전국민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한국의 10배, 심지어 100배를 웃도는 사례도 있다.
그런 미국에서 최근 병원과 의사그룹의 인수·통합이 진료비를 높이는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대형 의료체계가 지역 병원과 의원을 흡수하면서 보험사에 대한 가격 협상력이 높아지고, 기존 의원이 병원 외래부서로 편입된 뒤 시설사용료까지 붙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미국 의료경영전문지 Managed Healthcare Executive에 따르면 미국 병원 가격은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약 3배로 상승했다. 예일대학교 Health Care Affordability Lab이 2000~2025년 이뤄진 의료체계 합병 1331건을 분석한 결과, 429건(32%)은 경쟁 감소로 병원의 가격 협상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서 이뤄졌다.
병원과 의사그룹의 결합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24년 기준 미국 의사의 47%가 의료체계와 연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은 병원이 독립 의원을 인수해 병원 외래부서로 편입할 경우 의사 진료비 외에 병원 시설사용료를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환자가 이전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도 부담액이 늘어날 수 있다. 한국의 보건의료 체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가격 상승폭도 적지 않다. 미국 보건정책 학술지 Health Affairs는 최근 미국 각 주의 의료비 억제 정책을 분석하면서 병원이 의사 진료소를 인수하는 수직적 통합 이후 병원 가격이 3~5%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가격 상승 원인으로 의료체계의 협상력 확대와 높은 강도의 진료코드 적용, 기존 독립 의원이 병원 외래부서로 바뀌면서 부과되는 시설사용료 등을 꼽았다.
미국 각 주정부는 병원 인수·통합 이후 진료비가 오르는 구조를 손질하기 위해 시설사용료 제한과 '사이트 뉴트럴(site-neutral)'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사이트 뉴트럴은 병원 외래부서와 독립 의원에서 동일한 진료가 이뤄질 경우 진료 장소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지 않도록 지급 기준을 맞추는 방식이다.
Health Affairs에 따르면 뉴욕주는 올해 'Fair Pricing Act(공정가격법)'를 통해 일부 외래진료 가격을 비병원 메디케어 요율의 15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며, 펜실베이니아와 버지니아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다.
시설사용료 자체를 제한하려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일리노이·매사추세츠·미시간·미네소타·뉴저지·뉴욕·노스캐롤라이나·펜실베이니아·로드아일랜드·버몬트·웨스트버지니아 등에서 일부 진료에 시설사용료를 제한하는 법안이 추진됐다. 이 가운데 일부 주는 이미 관련 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뉴멕시코주는 예방서비스와 예방접종, 원격진료에 시설사용료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연방정부는 가격 정보 공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병원비 상승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서비스센터(CMS)는 2026년부터 병원이 보험사별 협상가격을 비율이나 산식으로 정하는 경우 실제 지급자료를 토대로 허용금액의 중앙값과 10·90백분위 값, 그리고 산출에 사용한 지급 건수를 기계 판독형 파일로 공개하도록 했다. 관련 규정은 올해 1월 1일 시행됐고, CMS는 새 공개 항목에 대한 집행을 4월 1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병원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의료기관의 생존과 진료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합과 대형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미국병원협회(AHA)는 특히 농촌지역 병원들이 인력난과 높은 운영비, 낮은 수익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대형 의료체계와의 통합이 경영 안정과 의료서비스 유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병원비 상승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병원 인수·통합 이후 실제 진료가격이 얼마나 달라지는지에 따라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주정부의 시설사용료 제한과 사이트 뉴트럴 정책, 연방정부의 가격 정보 공개 강화가 맞물리면서 병원 인수 전후의 가격 변화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자료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OECD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미국의 전체 보건의료비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17.6%로, 한국의 8.4%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1인당 보건의료비도 최신 비교자료인 2024년 기준 미국이 구매력 기준 1만 4885달러로 한국의 4979달러보다 약 3배 많았다.
특히 미국과 한국의 의료비 격차는 암질환과 심장질환 등 특정 질환으로 들어다면 더욱 커지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암환자가 산정특례 적용을 받을 경우 해당 암 치료의 건강보험 급여비용 가운데 5%만 본인이 부담하지만, 미국은 병원별 정가와 보험사 협상가격 차이가 크고 보험 가입 여부와 보장 수준에 따라 환자 부담도 크게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