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다발성경화증은 면역체계가 뇌와 척수의 신경을 둘러싼 수초를 공격하면서 시력 저하와 감각 이상, 보행 장애 등이 나타나는 만성 신경질환이다. 재발과 호전을 반복하는 유형이 있는 반면, 처음부터 장애가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원발진행형 다발성경화증(PPMS)은 치료 선택지가 특히 제한적이다.
이런 가운데 로슈(Roche)의 경구용 브루톤 티로신 키나제(BTK) 억제제 '페네브루티닙(fenebrutinib)'이 재발형 다발성경화증(RMS)과 PPMS 두 적응증에서 미국 허가심사에 들어갔다.
로슈는 3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페네브루티닙'의 신약허가신청(NDA)을 우선심사 대상으로 접수했다고 밝혔다. 허가신청은 RMS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FENhance 1·2'와 PPMS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FENtrepid' 결과를 근거로 했다.
회사에 따르면 BTK 억제제가 RMS와 PPMS 두 유형을 대상으로 동시에 FDA 허가심사에 들어간 것은 '페네브루티닙'이 처음이다. 승인될 경우 두 질환 모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첫 BTK 억제제이자 고효능 경구 치료제가 된다.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로슈 본사 전경 [사진=Taxiarchos228, FAL, via Wikimedia Commons]RMS 3상 재발률 최대 58.5% 감소
FENhance 1과 FENhance 2는 18~55세 RMS 환자를 대상으로 '페네브루티닙' 200mg 1일 2회와 기존 경구 치료제 '테리플루노마이드(teriflunomide)' 14mg 1일 1회를 비교한 다기관 무작위 3상이다. 환자들은 최소 96주 동안 치료를 받았다.
그 결과 1차평가변수인 연간 재발률(ARR)은 '페네브루티닙' 투여군에서 '테리플루노마이드' 대비 FENhance 1에서 51.1%, FENhance 2에서 58.5% 낮았다. 통계적 유의성도 각각 p<0.001, p<0.00001로 확인됐다. 로슈는 이를 평균 약 17년에 한 번 재발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MRI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T1 가돌리늄 조영 병변은 '테리플루노마이드' 대비 FENhance 1에서 70.7%, FENhance 2에서 77.6% 감소했다. 새로 발생하거나 커진 T2 병변은 각각 76.0%, 82.5% 줄었다.
12주 복합확정 장애진행(cCDP12)은 두 개별 시험에서 통계적 우월성을 입증하지 못했지만 '페네브루티닙'에 유리한 방향을 보였다. 두 시험 통합분석에서는 위험비(HR)가 0.84(95% 신뢰구간 0.71~0.99)였고, 확장장애상태척도(EDSS)와 9홀 페그검사(9HPT)를 이용한 사후분석에서는 HR 0.77(0.61~0.97)로 나타났다.
PPMS 3상, '오크레부스'와 비열등성 입증
PPMS 환자를 대상으로 한 FENtrepid에서는 '페네브루티닙'을 현재 PPMS에 승인된 로슈의 '오크레부스(Ocrevus, 오크렐리주맙·ocrelizumab)'와 직접 비교했다.
그 결과 '페네브루티닙'은 1차평가변수인 cCDP12에서 '오크레부스'에 대한 비열등성을 충족했다. 장애 진행 위험은 '오크레부스'보다 수치상 12% 낮았으며 HR은 0.88, 95% 신뢰구간은 0.75~1.03이었다. 두 군의 장애 진행 곡선은 치료 24주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비열등성은 '페네브루티닙'이 '오크레부스'보다 더 우수하다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정한 범위 안에서 장애 진행 억제 효과가 임상적으로 뒤처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로슈는 지난 4월 투자자 자료에서 "FENtrepid에서 9홀 페그검사를 통해 평가한 상지 기능에서 가장 큰 치료효과가 나타났으며, '페네브루티닙'이 PPMS에서 효능을 보인 첫 경구 치료제이자 두 번째 치료제"라고 설명했다.
현재 PPMS에 대해 FDA 승인을 받은 치료제는 '오크레부스'가 유일하다. PPMS는 뚜렷한 재발과 관해 없이 신경학적 장애가 점차 진행하는 형태로, 전체 다발성경화증 환자의 약 15%를 차지한다.
BTK 억제제 '페네브루티닙', B세포·미세아교세포 동시 표적
'페네브루티닙'은 중추신경계 침투가 가능한 비공유결합·가역적 BTK 억제제다. BTK는 B세포와 골수계 면역세포 활성화에 관여하는 효소로, 다발성경화증의 재발뿐 아니라 장기간 장애 진행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슈는 '페네브루티닙'이 혈액뇌장벽을 통과해 말초 B세포뿐 아니라 뇌 내부의 미세아교세포에도 작용하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B세포 억제를 통해 재발을 일으키는 급성 염증을 조절하고, 미세아교세포 억제를 통해 장기간 장애 진행에 관여하는 만성 신경염증을 줄인다는 얘기다.
로슈가 공개한 약동학 자료에 따르면 '페네브루티닙'은 혈장과 뇌척수액에서 B세포와 미세아교세포를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의 약물 농도를 24시간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지금까지 다발성경화증과 다른 자가면역질환 임상에서 2700명 이상에게 투여됐다.
간효소 상승·사망 사례 불균형 확인해야
안전성에서는 비교군과 비슷한 부분과 차이가 나타난 부분이 함께 확인됐다. FENhance 1에서 중대한 이상반응 발생률은 '페네브루티닙' 9%, '테리플루노마이드' 9%였고, FENhance 2에서는 각각 11%, 6%였다. FENtrepid에서는 '페네브루티닙'과 '오크레부스' 모두 19%였다. 간효소 상승은 RMS 시험에서는 두 군이 비슷했지만 PPMS 시험에서는 '페네브루티닙'군에서 '오크레부스'보다 더 많이 나타났다.
3건의 3상에서는 사망 사례의 불균형도 보고됐다. 로슈는 사망 시점과 원인이 서로 달랐다고 설명했다. FENhance 1·2의 상세 자료에서는 '페네브루티닙'군에서 치명적 이상반응 7건, '테리플루노마이드'군에서 1건이 보고됐으며, 연구진은 이 가운데 폐렴과 크립토콕쿠스 감염 2건을 시험약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했다.
로슈는 "전체 3상과 이전 임상을 종합할 때 '페네브루티닙'의 안전성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FDA가 '페네브루티닙'을 승인하면 로슈는 기존 '오크레부스'에 이어 경구용 BTK 억제제를 추가하면서 RMS와 PPMS 두 영역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무기를 쥐게 된다. 특히 주사나 정맥주입 치료가 중심인 고효능 치료 영역에서 경구약이라는 투여 편의성까지 갖추게 되면서 시장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