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위고비'와 '마운자로' 등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급성장이 의약품 시장을 넘어 의료기기 시장까지 흔들고 있다. 약물로 체중을 줄이려는 환자가 늘면서 위밴드와 위풍선 등 비만 치료에 사용되는 의료기기 시장이 앞으로 10년간 약 30%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GlobalData)는 최근 세계 위밴드·위풍선 시장이 2025년 4910만 달러에서 2035년 3420만 달러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10년간 약 30.3% 줄어드는 것으로, 연평균 성장률은 -3.54%다.
글로벌데이터는 이 같은 시장 위축의 주요 배경으로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 터제파타이드(tirzepatide), 리라글루타이드(liraglutide) 등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빠른 확산을 꼽았다. 약물치료가 비만수술이나 시술을 선택하던 일부 환자의 새로운 치료 선택지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의료기기 수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위고비'와 '마운자로' 등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급성장이 의약품 시장을 넘어 의료기기 시장까지 흔들고 있다. [자료=GlobalData·미국대사비만수술학회(ASMBS) 등, 헬스코리아뉴스 재구성]GLP-1 처방 2배 늘 때 비만수술은 감소
이는 실제 의료현장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하버드대 연구진이 미국 민간보험 가입자 약 1700만 명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 하반기 사이 비만 치료를 위한 GLP-1 계열 약물 처방률은 105.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사·비만수술을 받은 환자의 비율은 8.7% 감소했다. 연구진은 "GLP-1 계열 약물이 빠르게 확산되는 동안 비만수술 이용률이 감소하는 변화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후 수술 감소세는 더욱 뚜렷해졌다. 미국대사비만수술학회(ASMBS) 학술대회에서 올해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인증 의료기관에서 시행된 대사·비만수술은 2023년 21만 7387건에서 2024년 17만 7297건으로 18.4% 감소했다.
2022년 23만 207건과 비교하면 감소폭은 더 크다. 연구진은 비만 인구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GLP-1 치료제 사용이 급증하는 시기에 수술 건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연구팀이 미국의 대규모 전자의무기록 데이터베이스인 '에픽 코스모스(Epic Cosmos)'를 이용해 중증 비만 환자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됐다. 중증 비만 환자 약 2000만 명의 의료기록을 분석한 결과 GLP-1 처방은 2018년 4592건에서 2025년 142만 1202건으로 폭증했다.
반면 같은 데이터에서 비만수술은 2018년 1만 9792건에서 2023년 4만 2615건까지 증가했다가 2024년 3만 7339건, 2025년 3만 3429건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GLP-1 비만치료제의 등장이 의약품 시장은 물론, 의료기기 시장의 구도까지 재편하고 있다. [AI 생성이미지]위밴드·위풍선 시장 직격탄
비만수술과 시술 감소는 관련 의료기기 업계에도 큰 부담을 안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위밴드는 위 상부를 밴드로 조여 음식 섭취량을 제한하는 의료기기다. 위풍선은 내시경 등을 통해 위 안에 풍선을 넣어 포만감을 높이고 음식 섭취를 줄이는 의료기기다.
글로벌데이터는 이들 기기의 시장 감소가 수술·시술 건수 감소와 맞물리면서 제조업체의 매출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세계 위밴드·위풍선 시장은 보스턴사이언티픽(Boston Scientific)이 절반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바이오라드 메디시스(Biorad Medisys), 알루리온 테크놀로지스(Allurion Technologies) 등이 경쟁하고 있다.
시장 자체가 축소되면 규모가 작은 업체일수록 매출 감소에 따른 압박을 크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글로벌데이터의 분석이다.
그렇다고 비만수술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GLP-1 계열 치료제가 급성장하고 있지만, 수술이나 시술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최근 연구에서는 약물과 수술의 역할이 재편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ASMBS가 올해 발표한 43만 명 이상의 환자를 포함한 실제진료자료 분석을 보면 대사·비만수술이 GLP-1 치료보다 장기적인 체중감량 효과에서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연구에서는 GLP-1 치료를 먼저 받은 뒤 수술을 받은 환자의 경우 수술 후 상당한 추가 체중감량 효과를 보였다.
글로벌데이터 역시 GLP-1 치료제가 비만수술을 완전히 대체하기 보다 환자의 치료경로를 바꾸는데 활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환자는 약물이 수술을 대신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GLP-1 치료를 중단한 뒤 체중이 다시 증가하는 환자가 있고 중증 비만 환자 가운데 수술이 더 적합한 경우도 있어, 현재의 의료기기 시장 감소세가 장기간 같은 속도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