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기술수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해외 제약사와 신약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표현이다. 계약 규모가 수조 원에 달하는 사례는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기술수출 계약은 신약 개발의 종착점이 아니다. 실제 계약 이후의 운명은 크게 갈린다. 글로벌 임상과 허가를 거쳐 시장에 진입하는 신약이 있는 반면, 개발 도중 해외 파트너가 손을 떼면서 권리가 원개발사로 돌아오는 후보물질도 적지 않다.
화려한 계약 발표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국산 신약 후보물질. 헬스코리아뉴스는 지난 35년간 해외로 기술수출된 주요 국산 신약 후보물질의 이후 행적을 추적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 조 단위 수출은 기본, K-신약 지금은 어디에 있나
[중] 수조 원 계약도 돌아왔다…권리반환된 K-신약의 엇갈린 운명
[하] '진짜 성공'은 어디까지?…글로벌 시장에 살아남은 한국 신약들
지난 35년간 국산 신약 후보물질의 해외 기술수출은 단순한 계약을 넘어 글로벌 임상과 허가, 상업화로 이어지는 도전의 역사였다. 그 과정에서 일부 후보물질은 권리반환과 개발중단이라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신약개발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소중한 자산이 됐다. [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해외 기술수출에 성공한 신약 후보물질이 다시 원개발사로 돌아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임상시험에서 기대했던 효능을 입증하지 못해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가 대표적이지만, 경쟁환경이 달라지거나 글로벌 제약사가 연구개발 우선순위를 바꾸면서 후보물질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인수합병 이후 사업전략이 달라지거나, 임상개발에 필요한 비용과 예상 시장가치를 다시 계산한 끝에 권리를 포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권리반환'이라는 결과만 보고 후보물질의 실패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왜 돌아왔고, 그 뒤 개발이 어떻게 이어졌느냐다.
한미약품 2015년 기술수출, 몇 년 뒤 엇갈린 운명
국내 기술수출 역사에서 이런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기업은 한미약품이다.
한미약품은 2015년 일라이릴리에 BTK 저해제 포셀티닙(poseltinib·HM71224)을 최대 6억 9000만 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릴리는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로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했지만 유효성 입증에 실패했고 2019년 권리를 반환했다.
하지만 포셀티닙의 개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미약품은 적응증을 자가면역질환에서 혈액암으로 바꿨고 2021년 국내 바이오기업 지놈오피니언과 공동개발에 들어갔다. 지놈오피니언은 이후 노보메디슨(NOBO Medicine)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한미약품은 2024년 6월 포셀티닙의 전 세계 개발·상업화 권리를 이 회사에 다시 기술이전했다.
현재 포셀티닙은 재발·불응성 원발성 중추신경계 림프종과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 비호지킨 림프종 등 혈액암을 대상으로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노보메디슨은 2026년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재발·불응성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을 대상으로 한 연구자주도 임상 1/2상 시험계획을 승인받았고, 4월에는 1차 치료 이후 공고요법으로 사용하는 2상 시험계획을 식약처에 제출했다.
같은 해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수출됐던 폐암 후보물질 올무티닙(olmutinib·HM61713)은 다른 길을 걸었다. 한미약품은 올무티닙을 최대 7억 3000만 달러 규모로 이전했지만 베링거인겔하임은 2016년 권리를 반환했다. 중국 권리를 확보했던 자이랩도 이후 계약을 종료했다. 한미약품은 자체 개발을 이어갔지만 결국 2018년 개발 중단을 결정했다.
포셀티닙이 적응증을 바꿔 다시 되살아난 사례라면 올무티닙은 권리반환 이후 원개발사까지 개발을 접은 사례다.
사노피와 체결했던 '퀀텀프로젝트'도 최초 계약 당시와 몇 년 뒤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한미약품은 2015년 지속형 당뇨병 치료 후보물질 3개를 묶어 최대 약 39억 유로 규모로 사노피에 기술수출했다. 이후 지속형 인슐린 후보물질 등이 계약에서 빠지고 조건이 축소됐으며, 마지막까지 남았던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HM11260C)도 2020년 한미약품으로 돌아왔다. 사노피는 당시 권리반환이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유효성·안전성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사업전략 변경에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에페글레나타이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미약품은 반환 이후 자체 개발을 재개했다. 사노피가 진행했던 약 6000명 규모 글로벌 3상 데이터도 그대로 남았다. 현재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를 비만 치료제로 임상 3상에서 개발하고 있으며,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도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가 사업전략상 포기한 후보가 원개발사의 핵심 후기 파이프라인으로 다시 자리 잡은 셈이다.
얀센서 돌아온 HM12525A, MSD가 다시 선택
권리반환 이후 다른 글로벌 제약사가 다시 선택한 경우도 있다. 한미약품의 HM12525A가 대표적이다.
한미약품은 2015년 이 후보물질을 비만·당뇨 치료제로 얀센에 최대 9억 1500만 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얀센은 임상개발을 진행했지만 2019년 권리를 반환했다.
한미약품은 후보물질을 다시 들여다봤고 2020년 미국 MSD에 최대 8억 7000만 달러 규모로 재기술수출했다. 개발 목적도 비만·당뇨에서 대사이상 지방간염(MASH)으로 바꾸었다.
현재 후보물질은 에피노페그듀타이드(efinopegdutide·MK-6024)라는 이름으로 개발되고 있다. 381명이 참여한 글로벌 임상 2b상까지 완료돼 한 차례 권리반환을 겪은 뒤에도 새로운 파트너와 후기 개발 단계까지 진입했다. 한미약품 공시에서도 MSD와의 계약은 현재 유지되고 있다.
'한미약품→얀센→권리반환→한미약품→MSD'로 이어진 이 과정은 글로벌 제약사 한 곳의 반환이 후보물질 자체의 사망선고와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벤처 신약도 반환 이후 갈림길
바이오벤처의 기술수출에서도 권리반환 이후 행적은 크게 갈렸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2019년 특발성폐섬유증 치료 후보물질 BBT-877을 베링거인겔하임에 11억 4500만 유로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그러나 베링거인겔하임은 2020년 권리를 반환했다.
브릿지바이오는 자체 개발을 재개해 129명의 환자가 참여한 글로벌 임상 2상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2025년 4월 발표한 결과에서 1차 평가지표인 24주 강제폐활량(FVC) 변화가 위약군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못했다. 회사는 이후 하위군·바이오마커·CT 영상 등을 추가 분석해 후속 개발 전략을 다시 세우기로 했다. 2026년 사업보고서에도 BBT-877은 '글로벌 다국가 임상 2상 완료' 상태로 남아 있지만 후속 3상 진입은 확인되지 않는다.
권리반환 뒤 자체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다시 임상 효능이라는 벽을 만난 사례다.
큐라클의 리바스테랏(rivasterat·CU06)은 아직 다른 경로를 밟고 있다. 큐라클은 2021년 프랑스 떼아 오픈이노베이션(Théa Open Innovation)에 CU06을 최대 1억 6350만 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했다가 2024년 권리를 돌려받았다.
이후 자체 개발을 이어가 미국 당뇨병성 황반부종 임상 2a상을 완료했고, 현재는 후속 2b상을 준비 중이다. 지난 7월에는 2b상용 임상시험약 생산을 마쳤으며 안정성·품질 확인을 거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시험계획을 신청할 예정이다.
권리가 돌아왔지만 후보물질의 개발 생명은 아직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임상 실패로 돌아온 JW1601…SAL200은 새 파트너 찾기
JW중외제약의 아토피피부염 후보물질 이주포란트(izuforant·JW1601)는 권리반환 이유가 비교적 분명한 사례다.
JW중외제약은 2018년 JW1601을 덴마크 레오파마에 최대 4억 200만 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그러나 레오파마가 진행한 글로벌 임상 2a/b상에서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했고 2023년 권리반환이 결정됐다. 안전성에서 새로운 문제가 확인된 것은 아니었지만, 효능을 입증하지 못한 것이 반환의 직접적인 계기였다. JW중외제약은 이후 새로운 적응증을 포함한 후속 개발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트론바이오테크놀로지의 박테리오파지 유래 엔도리신 항균제 SAL200은 사업적 판단에 따른 반환 사례에 가깝다. 인트론바이오는 2018년 로이반트 자회사 라이소반트에 SAL200을 기술수출했다. 최초 계약 규모는 최대 6억 6750만 달러였으며, 2019년 계약조건 변경으로 최대 9억 9250만 달러로 확대됐다.
그러나 라이소반트는 미국 임상 2상 승인까지 받아놓고 2022년 향후 임상개발 비용 부담을 이유로 계약을 종료하고 권리를 반환했다. 당시 회사는 기술적 문제나 안전성 때문이 아니라 로이반트그룹의 투자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인트론바이오는 다시 SAL200 개발을 맡았다. 2026년 사업보고서 기준 SAL200은 미국 FDA 임상 2b상 시험계획 승인을 확보한 상태이며 회사는 글로벌 제약사와 재기술수출 또는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별도로 SAL200을 이용한 비강 황색포도알균 제거 치료제도 임상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계약 반환보다 그 이후가 중요
해외 파트너가 권리를 돌려줬다는 사실은 신약 후보물질에 분명 큰 악재다. 하지만 반환은 개발의 끝일 수도 있고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지난 35년의 사례는 같은 권리반환이라도 이후의 선택에 따라 재기술수출과 적응증 전환, 자체 개발 재개, 임상 실패와 개발 중단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권리가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후보물질이 이후에도 개발 생명력을 유지했는지 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