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암 조기진단 생명공학 기업 그레일(GRAIL) 본사 전경. 그레일은 혈액 기반 다중암 조기검사 '갤러리(Galleri)'를 개발했다. [사진=그레일 제공][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삼성물산이 국내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 그레일(GRAIL)의 다중암 조기진단 혈액검사 '갤러리(Galleri)'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 심판대에 오른다.
FDA는 오는 9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열어 갤러리의 시판 전 승인(PMA·Premarket Approval) 신청을 심의할 예정이다. PMA는 고위험 의료기기에 적용되는 FDA의 가장 엄격한 허가 심사 절차다. 자문위원회의 권고가 FDA를 법적으로 구속하지는 않지만, 최종 허가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갤러리는 한 번의 채혈로 혈액 속에 존재하는 암 관련 분자 신호를 분석해 50여 종의 암 가능성을 탐지하는 다중암 조기검사(MCED·Multi-Cancer Early Detection)다. 종양에서 혈액으로 방출되는 세포유리DNA(cfDNA)의 특징을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으로 분석해 암 신호뿐 아니라 암이 발생한 조직의 위치까지 예측한다.
기존 유방촬영술이나 대장내시경처럼 특정 암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검사와 달리 여러 암을 동시에 찾아내는 것이 목표다. 현재 미국에서 의사가 처방할 수 있는 검사로 제공되고 있지만 FDA 허가를 받은 상태는 아니다. 그레일은 올해 1월 29일 FDA에 갤러리의 PMA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레일 연구원이 혈액 검체를 분석하고 있다. 그레일의 다중암 조기검사 '갤러리'는 혈액 속 암 관련 신호를 분석해 여러 암의 발생 가능성과 원발 부위를 추정한다. [사진=그레일]삼성, 1억 1000만 달러 투자…한국 상용화 추진
이번 FDA 심사는 국내에서도 관심을 끈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그레일에 대규모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고 갤러리의 국내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그레일과 전략적 협력을 체결하고 총 1억 1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물산은 갤러리의 한국 상용화를 주도하고 향후 일본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투자 절차는 올해 6월 완료됐다.
삼성 측은 당시 갤러리가 혈액 내 수억 개의 DNA 조각 가운데 암과 관련된 신호를 찾아내고 AI 기반 유전체 분석을 통해 암 발생 여부와 장기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갤러리는 2021년 미국에서 출시된 이후 지난해 10월 기준 약 40만 건의 누적 검사 실적을 기록했다.
FDA 허가 여부는 향후 미국 시장뿐 아니라 삼성물산이 추진하는 국내·아시아 사업에도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그레일의 혈액 검체 분석시설 전경. 그레일은 이곳에서 다중암 조기검사 '갤러리(Galleri)'를 위한 혈액 검체 분석을 수행한다. [사진=그레일]14만 명 무작위 임상서 1차 목표는 실패
FDA 자문위원들이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부분은 갤러리의 임상적 유용성이다.
특히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와 진행한 대규모 'NHS-갤러리' 임상시험 결과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는 암 증상이 없는 50~77세 성인 약 14만 2000명을 대상으로 갤러리 검사를 매년 시행했을 때 기존 표준 암 검진만 받은 경우보다 진행성 암 진단을 줄일 수 있는지를 평가한 무작위 대조시험이다. 다중암 조기검사를 대상으로 한 최대 규모의 무작위 연구 가운데 하나다.
결과는 명암이 엇갈렸다.
사전에 정한 12개 암에서 3·4기 암 발생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줄인다는 1차 평가지표는 충족하지 못했다. 갤러리 검사군에서 3·4기 암은 706건, 대조군에서는 688건 발생했다. 발생률비(IRR)는 1.03으로 통계적 차이가 없었다.
반면 가장 진행된 4기 암만 놓고 보면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12개 암의 4기 진단은 전체 3년간 갤러리 검사군에서 342건, 대조군에서 397건으로 14% 감소했다.
검사를 반복할수록 차이는 더 커졌다. 첫 번째 검사에서는 4기 암이 9% 줄었지만 두 번째 검사에서는 22%, 세 번째 검사에서는 26% 감소했다. 세 번째 검사 시점의 발생률비는 0.74로 나타났다.
초기 암 발견도 증가했다. 갤러리를 기존 검진에 추가했을 때 12개 암의 1·2기 진단은 647건으로 대조군 559건보다 16% 많았다. 전체적으로 선별검사를 통해 발견된 암은 검사군 1173건, 대조군 290건으로 약 4배 차이가 났다.
검사의 특이도는 99.55%, 양성예측도는 52.0%였다. 암 발생 장기 예측 정확도는 첫 번째 후보 기준 87.0%, 상위 두 개 후보를 기준으로 하면 92.5%였다.
그레일의 다중암 조기검사 '갤러리(Galleri)' 검사 키트. 갤러리는 혈액 속 암 관련 신호를 분석해 여러 암의 발생 가능성과 원발 부위를 추정한다. [사진=그레일]FDA 판단 핵심은 '실제 이익 있느냐'
갤러리를 둘러싼 쟁점은 단순히 암 신호를 얼마나 많이 발견하느냐가 아니다.
암을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찾아내는 것이 실제로 진행성 암이나 암 사망을 줄이는 임상적 이익으로 이어지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임상종양학회(ASCO)도 NHS-갤러리 결과에 대해 4기 암 감소 등 고무적인 신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사전에 정한 3·4기 암 감소라는 1차 평가지표를 통계적으로 충족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현재 표준 선별검사가 없는 난소암·췌장암 등의 조기 발견 가능성은 주목할 만하지만 인구집단 차원의 이익과 위험을 판단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FDA 자문위원회에서는 이 같은 임상자료를 토대로 갤러리가 대규모 무증상 인구에게 사용할 만큼 충분한 임상적 유용성과 안전성을 입증했는지가 집중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갤러리가 FDA 허가를 받을 경우 다중암 조기검사가 연구·자비부담 검사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제도권 암 검진 시장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FDA가 핵심 임상시험의 1차 목표 실패를 중대한 한계로 판단할 경우 그레일뿐 아니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다중암 조기진단 시장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