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특이적 재조합효소가 숙주세포 유전체에 삽입된 바이러스 DNA를 절제하는 줄기세포 유전자치료 개념도. [사진=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숙주세포 유전체에 남긴 DNA를 직접 잘라내도록 설계한 줄기세포 유전자치료제의 첫 사람 대상 임상시험이 조만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HIV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이 치료제는 환자의 자가 조혈모세포에 HIV 특이적 재조합효소 'Brec1'을 발현하는 유전자를 넣은 뒤 다시 투여하는 방식이다. Brec1은 감염세포 유전체에 삽입된 HIV 프로바이러스 DNA의 특정 서열을 인식해 바이러스 유전체를 절제하도록 설계한 효소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와 독일적십자 혈액서비스, 유전자편집기업 프로비렉스 게놈 에디팅 테라퓨틱스(PROVIREX Genome Editing Therapies) 공동 연구팀은 이 치료제의 임상시험용 제조공정과 품질관리 체계를 확립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4일 발표했다.
연구진은 독일 의약품법에 따른 임상시험용 의약품 제조허가를 확보했으며, 세포 생착과 면역 재구성,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 중단 이후 HIV 통제 가능성을 평가하는 첫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바이러스 숨은 유전체 직접 절제
현재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는 HIV 증식을 억제하고 면역기능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감염세포 유전체에 삽입된 바이러스 DNA까지 제거하지는 못한다. 치료를 중단하면 잠복 저장소에 있던 바이러스가 다시 활성화될 수 있는 이유다.
연구진이 개발한 Brec1은 HIV-1 주요 분리주 대부분에 존재하는 34염기쌍의 'loxBTR' 서열을 인식한다. 두 개의 loxBTR 부위 사이에 삽입된 HIV 프로바이러스 DNA를 부위특이적 재조합 방식으로 잘라내 감염세포에서 바이러스 유전체를 제거하는 구조다.
Brec1은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과 달리 DNA 이중가닥 절단을 유도하거나 세포의 DNA 복구과정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연구진은 여러 분자가 두 표적 부위에 동시에 결합해 재조합 복합체를 형성해야 작동하기 때문에 비표적 절제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치료제에는 HIV 감염세포에서만 Brec1이 활성화되도록 하는 추가 안전장치도 적용됐다. HIV 감염 또는 잠복 바이러스 재활성화 초기에 만들어지는 바이러스 단백질 'Tat'가 나타나야 Brec1 유전자의 발현이 유도되는 구조다.
조혈모세포에 삽입된 Brec1 유전자는 해당 세포에서 분화한 면역세포로 전달된다. 이 세포가 HIV에 감염되면 Tat가 만들어지고, 이어 Brec1이 발현돼 세포 유전체에 삽입된 HIV DNA를 절제하도록 설계됐다.
연구진은 앞선 세포·동물 연구에서 Brec1이 시험관 내 세포와 HIV 감염 인간화 생쥐에서 바이러스 부하를 검출한계 아래로 낮춘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문은 이러한 효능을 새로 검증한 연구가 아니라, 환자 투여에 필요한 임상용 세포제품의 제조와 품질관리 체계를 확립한 결과다.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4일 공개된 HIV 줄기세포 유전자치료제 개발 논문 화면. [자료=사이언티픽 리포트 갈무리]해동 후 세포 생존율 95.8%…모든 출하 기준 충족
연구진은 건강한 공여자에게서 확보한 잉여 CD34 양성 조혈모세포를 이용해 4차례의 공정 검증 생산과 1차례의 안정성 평가용 생산을 수행했다.
조혈모세포를 분리한 뒤 렌티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해 Brec1 유전자를 도입하고, 세척과 배양을 거쳐 동결보존하는 반자동 제조공정을 구축했다. 세포 선택에는 클리니맥스 프로(CliniMACS Pro), 유전자 도입에는 클리니맥스 프로디지(CliniMACS Prodigy)가 사용됐다.
다섯 차례 생산된 모든 제품은 사전에 설정한 미생물 오염, 마이코플라스마, 엔도톡신, 세포 생존율, 순도, 유전자 도입률, 유전자 발현 유도능 등의 출하 기준을 충족했다.
CD34 양성 세포의 평균 회수율은 분리 단계에서 58.9%였고, 유전자 도입과 배양 뒤에는 투입 세포의 평균 81.6%가 회수됐다. 전체 공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회수된 CD34 양성 세포는 최초 채취량의 평균 48.2%였다.
동결제품을 해동한 뒤 평균 세포 생존율은 95.8%로 나타났다. Brec1 유전자가 도입된 세포 비율은 평균 50.0%였으며, 생산 회차별로 29.0~80.0%의 범위를 보였다.
HIV Tat 단백질로 자극했을 때 Brec1 유전자 발현은 최소 18.1배, 최대 71.3배 증가했다. 연구진이 설정한 출하 기준인 3배 이상을 모든 제품이 충족했다.
자가 조혈모세포 채취해 유전자 도입 후 재투여
계획된 임상에서는 HIV 감염 환자에게 조혈모세포 동원제를 투여해 자가 CD34 양성 조혈모세포를 채취한다. 연구진은 이 세포에 Brec1 유전자를 넣고 동결보존한 뒤, 환자에게 부설판(busulfan)을 투여해 기존 골수세포 일부를 제거한 다음 다시 주입할 계획이다.
연구진은 이식된 Brec1 변형 조혈모세포가 여러 혈액·면역세포 계통으로 분화하면,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중단한 뒤에도 HIV 감염에 저항하는 면역세포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다시 증식하더라도 Brec1 변형 면역세포에서 바이러스 DNA가 제거되고, 이 세포가 HIV에 대한 적응면역반응을 형성하면 약물 없이 감염을 통제하거나 바이러스를 제거할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이다.
첫 임상에서는 세포의 생착 여부, 말초혈액 면역세포 재구성, HIV 특이 면역반응과 함께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중단했을 때 바이러스 증식을 통제할 수 있는지를 평가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임상 개시 시점과 참여 환자 수, 시험 단계는 이번 논문에 공개되지 않았다.
"치료 효과는 첫 임상서 확인해야"
이번 연구는 실제 HIV 감염 환자가 아니라 건강한 공여자의 잉여 조혈모세포를 이용해 제조공정을 검증했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진도 임상에서 사용할 환자 세포는 동원 반응과 세포 수, 품질이 다를 수 있다고 밝혔다.
검증 생산에 사용된 세포량도 실제 성인 환자 투여를 위한 완전한 임상 규모에는 미치지 못했다. 연구진은 임상에서 필요한 세포를 확보하기 위해 과립구집락자극인자(G-CSF)와 플레릭사포르(plerixafor)를 병용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최종 세포제품에는 제조과정에서 사용된 렌티바이러스 벡터 입자가 일부 남을 수 있다. HIV 감염 환자에게 투여하는 만큼 치료용 벡터와 환자의 야생형 HIV 사이에서 재조합이 발생할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
연구진은 벡터 구조상 재조합 위험이 매우 낮다고 평가했지만, 초기 투여 환자에서는 관련 사건을 장기적으로 감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Brec1이 HIV DNA를 제거한 세포와 Brec1 변형 조혈모세포에서 분화한 CD4 양성 T세포가 새로운 HIV 감염에 완전히 저항하는 것도 아니다. 연구진은 Brec1이 복제 가능한 프로바이러스와 잠복 저장소의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실제 완치 가능성은 첫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문 저자 가운데 일부는 치료제의 임상 개발을 추진하는 프로비렉스의 임직원 또는 창업자다. 프로비렉스는 Brec1을 포함한 HIV-1 재조합효소 관련 특허 3건의 독점 실시권을 보유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 별도의 연구비를 지원받지 않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