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정부가 연구중심병원 지정제를 인증제로 전환한 뒤 처음 실시한 평가에서 21개 병원이 최종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연구중심병원'이라는 동일한 간판 아래에서도 핵심 연구인력과 지식재산권, 자체 연구비, 임상연구 실적은 병원군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연구중심병원 1기 인증평가 결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기존 연구중심병원 10곳과 신규 참여 병원 20곳 등 총 30곳이 인증평가에 참여했다. 최종 인증기관은 기존 연구중심병원 10곳과 신규 신청 병원 11곳을 합한 21곳이었다. 신규 신청 병원 20곳 가운데 9곳은 인증을 받지 못한 셈이다.
이번 평가는 연구조직·인력·시설·실적 등 기본 요건을 확인하는 1단계 연구 기본역량 평가와, 최근 3년의 연구 성과 및 향후 3년의 운영계획을 검토하는 2단계 연구역량 평가로 진행됐다. 1단계를 통과한 병원만 2단계 평가를 받았으며, 2단계에서는 최근 3년 성과가 70%, 향후 3년 연구·운영계획이 30% 반영됐다. 최종 점수가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인 병원이 인증 대상으로 인정됐다.
인증평가 절차 및 최종 확정 [자료=한국보건산업진흥원]최종 인증기관은 가천대길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경북대병원, 경희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고려대구로병원, 고려대안산병원, 고려대안암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분당차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아주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이대목동병원, 인하대병원, 전남대병원, 한림대춘천성심병원 등 21곳이다. 이 가운데 기존 연구중심병원은 10곳, 새롭게 인증을 받은 병원은 11곳이다.
최종 1기 연구중심병원 인증기관 목록 [자료=한국보건산업진흥원]기본 조직·시설은 평준화…핵심 연구인력부터 격차
1단계 평가에서는 연구행정관리체계와 인사제도, 연구비 회계기준, 연구윤리 및 연구관리 시스템, 임상시험기관, 연구시설·장비 등 기본적인 조직과 인프라 관련 지표를 대부분의 신청 병원이 충족했다.
서류 기반 평가항목 12개 가운데 연구비 계정과 산·학·연·병 공동연구 인프라를 제외한 10개 지표는 30개 병원 모두 기준을 통과했다. 연구 수행에 필요한 기본 조직과 규정, 시설은 신청 병원 대부분이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차이는 핵심 연구인력에서 나타났다. 총 의사 대비 연구참여임상의사 비율과 연구전담의사, 선임급 연구전담요원 지표는 각각 30곳 중 28곳만 기준을 충족했다. 기존 연구중심병원의 평균 연구전담의사는 14.8명이었지만, 신규 신청 병원은 10.5명, 비인증 병원은 10.2명이었다.
선임급 연구전담요원은 격차가 더 컸다. 기존 연구중심병원 평균은 86.7명이었으나 신규 신청 병원은 35.8명, 비인증 병원은 25.9명으로 집계됐다. 최종 인증병원 평균은 64.2명이었다.
연구성과에서도 차이가 확인됐다. 핵심연구인력 1인당 SCI(E)급 논문 수는 인증병원이 평균 6.8편으로 비인증 병원 5.2편보다 많았다. 최근 3년간 지식재산권은 인증병원이 평균 226.4건으로 비인증 병원 103.6건의 두 배를 웃돌았다.
최근 1년 의료수익 대비 연구비 비율 역시 인증병원은 평균 9.9%였지만 비인증 병원은 7.1%에 그쳤다. 기본 시설과 제도는 상당 부분 평준화됐지만, 연구를 실제로 수행하는 전문인력과 연구성과, 투자 규모에서 인증 여부가 갈린 것으로 풀이된다.
[1단계 기본역량 평가 결과 AI 활용 헬스코리아뉴스 재구성]논문 영향력은 34.2 대 23.4…자체 연구비 증가율은 27.8% 대 1.4%
병원 간 격차는 2단계 연구역량의 질 평가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논문의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핵심연구인력 1인당 논문 영향력지수(IF)는 인증병원 평균이 34.2로, 비인증 병원 평균 23.4보다 10.8 높았다.
핵심연구인력 1인당 지식재산권은 인증병원이 평균 1.44건, 비인증 병원은 0.96건이었다. 삼극특허 등 주요 지식재산권은 인증병원이 평균 3.1건으로 비인증 병원 0.5건의 6배를 웃돌았다.
신의료기술 승인 건수만 보면 비인증 병원이 평균 1.8건으로 인증병원 1.2건보다 많았다. 보고서는 삼극특허와 신의료기술 승인 실적이 일부 상위 병원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저조해, 우수한 연구성과를 고부가가치 기술로 전환하는 역량은 다수 병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병원이 자체적으로 연구에 얼마나 투자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에서도 차이가 컸다. 총연구비 대비 자체 연구비 비중은 인증병원이 평균 7.6%, 비인증 병원은 4.9%였다. 최근 3년간 자체 연구비의 연평균 증가율은 인증병원이 27.8%에 달했으나 비인증 병원은 1.4%에 머물렀다.
임상시험과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 승인 건수는 인증병원이 평균 318.5건, 비인증 병원은 136.3건이었다. 총연구비 가운데 임상시험과 비임상시험 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율도 인증병원 50.5%, 비인증 병원 40.8%로 차이를 보였다.
이 같은 결과는 연구중심병원의 경쟁력이 단순한 시설 보유보다 우수한 연구인력의 확보, 지속적인 자체 투자, 임상연구 경험의 축적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2단계 연구역량 정량지표 평균값기존 인증병원도 모든 지표에서 우위는 아니었다
기존 연구중심병원이 모든 분야에서 신규 인증병원보다 앞선 것은 아니다. 논문 영향력지수는 기존 연구중심병원이 평균 34.7로 신규 참여 병원 30.1보다 높았고, 핵심연구인력 1인당 지식재산권과 삼극특허 실적에서도 우위를 보였다.
반면 최근 3년 자체 연구비의 연평균 증가율은 신규 참여 병원이 29.3%로 기존 연구중심병원 9.5%보다 크게 높았다. 임상시험 및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 승인 건수는 기존 연구중심병원이 평균 464.3건으로 신규 참여 병원 168.5건을 크게 앞섰지만, 신규 병원들이 자체 투자 확대를 통해 빠르게 연구역량을 끌어올리는 흐름도 확인됐다.
보고서는 기존 연구중심병원이 신규 참여 병원보다 전반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보였으나, 일부 연구비 유관 지표에서는 기존 병원군의 실적이 신규 참여 그룹보다 낮았다고 분석했다. 기존 병원에도 과거의 연구기반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인 투자 확대를 유도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인증 여부 넘어 연구성과의 지속 가능성 평가해야
평가위원들은 병원이 인프라와 장비 등 기본 여건은 갖췄지만, 연구인력의 규모와 안정성, 지속적인 연구비 확보에서는 병원 간 격차가 컸다고 진단했다. 논문과 특허 같은 양적 성과를 넘어 연구성과의 질적 수준과 임상적·산업적 파급효과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특히 병원의 규모와 기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평가기준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특정 분야에 특화된 병원을 동일한 절대 기준만으로 평가하면 각 기관의 특성과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연구중심병원 인증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연구비 투자를 유지하도록 중간 점검을 강화하고, 연구전담 조직과 인력의 안정성을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상시험과 중개연구, 기술사업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연구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연구성과가 실제 진료 개선과 산업화로 이어지는지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가 주안점 종합
평가 주안점 종합'인증 병원 수'보다 성과의 질 따질 때
연구중심병원 인증제는 병원이 진료뿐 아니라 연구개발과 기술사업화의 주체로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이번 평가에서 21곳이 첫 인증기관으로 선정된 것은 국내 병원 연구 생태계가 외형적으로 확대됐다는 의미가 있다.
평가 결과는 동시에 인증 병원들 사이에서도 연구인력과 투자, 임상연구, 사업화 역량이 균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특히 기본 조직과 시설보다 핵심 연구인력, 지식재산권, 자체 연구비 증가율, 임상연구 실적에서 병원군별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앞으로 연구중심병원 제도의 성패는 인증기관 수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인증을 받은 병원이 지속적으로 우수한 연구성과를 내고, 이를 신약·의료기기·신의료기술과 환자 치료 개선으로 연결하는지를 평가하는 데 달려 있다. '연구중심병원'이라는 간판이 실제 연구 경쟁력을 보증하려면 인증 이후의 성과와 지속 가능성을 더욱 엄격하게 살피는 후속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