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자료=헬스코리아뉴스 DB][프롤로그] 환자의 몸이 CAR-T 제조시설이 되는 시대
CAR-T 세포치료제는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혈액암 환자에게 완전관해와 장기 생존 가능성을 제시하며 암 치료의 역사를 바꿨다. 환자의 면역세포인 T세포를 꺼내 암세포를 인식하도록 유전적으로 재설계한 뒤 다시 투여하는 방식은 기존 항암제로 기대하기 어려웠던 강력한 치료효과를 보여줬다.
그러나 혁신의 이면에는 복잡하고 비싼 제조공정이 자리하고 있다. 기존 자가 CAR-T 치료는 환자의 혈액에서 T세포를 채취한 뒤 분리·활성화·유전자 도입·배양·품질검사·냉동·운송 과정을 거쳐야 한다. 환자마다 별도의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데다 제조에 수주가 걸리고, 치료 전에는 체내 림프구를 줄이는 항암요법도 받아야 한다.
이러한 한계를 정면으로 뒤집는 기술이 등장했다. 환자의 T세포를 몸 밖으로 꺼내지 않고, CAR 유전정보를 담은 바이러스 벡터나 지질나노입자(LNP)를 투여해 몸속에서 곧바로 CAR-T 세포를 만드는 '체내 CAR-T'다. 완성된 세포치료제를 환자별로 생산하는 대신 여러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전달체를 미리 제조한다는 점에서 기존 CAR-T와 출발점부터 다르다.
기술은 이미 동물실험을 넘어 사람에게 투여되기 시작했다. 렌티바이러스 벡터 기반 체내 CAR-T는 재발·불응성 다발골수종 환자 4명에게서 엄격한 완전반응과 부분반응을 관찰했고, LNP에 CAR mRNA를 실어 전달하는 방식은 영장류에서 빠르고 깊은 B세포 고갈과 이른바 '면역 리셋' 가능성을 보여줬다. 전자는 사람 대상 극소수 초기 사례이고 후자는 주로 동물실험 결과라는 한계가 있지만, 체내 CAR-T가 더 이상 실험실의 아이디어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기대만큼 위험도 크다. 기존 CAR-T는 투여 전에 세포의 생존율과 CAR 발현, 효력, 오염 여부 등을 검사할 수 있다. 체내 CAR-T는 실제 치료세포가 환자의 몸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T세포가 변환될지, 어느 조직으로 이동할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 원하지 않는 세포까지 유전적으로 변형될지를 사전에 완전히 확인하기 어렵다.
헬스코리아뉴스는 지난 3월 세포·유전자 치료제 산업의 침체와 재편을 진단한 데 이어, 이번에는 차세대 해법으로 부상한 체내 CAR-T의 기술과 임상·규제 과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환자의 몸을 CAR-T 제조시설로 바꾸려는 이 기술이 기존 세포치료제의 제조·비용·접근성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혁명인지, 통제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생물학적 실험인지 상·중·하 시리즈를 통해 짚어본다. <편집자 주>
[上] 환자 몸속에서 CAR-T를 만든다…암 치료의 새 혁명
[中] 바이러스냐 LNP냐…T세포를 찾아가는 '배송 전쟁'
[下] 싸고 빠른 CAR-T의 꿈…통제 불가능한 '몸속 공장' 될 수도
[上] 환자 몸속에서 CAR-T를 만든다…암 치료의 새 혁명
[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수억 원에 이르는 치료비와 수주간의 제조기간, 복잡한 냉동·운송 체계는 CAR-T 세포치료제의 강력한 치료효과가 더 많은 환자에게 전달되는 것을 가로막아 왔다. 체내 CAR-T는 환자별로 진행하던 복잡한 세포 제조공정을 몸속으로 옮기려는 새로운 시도다.
환자마다 따로 만드는 CAR-T…치료 전부터 시작되는 '제조 전쟁'
기존 자가 CAR-T 치료는 환자에게서 백혈구를 채취하는 성분채집술로 시작된다. 채취한 세포에서 T세포를 분리해 활성화한 뒤, 바이러스 벡터 등을 이용해 암세포를 인식하는 키메라항원수용체(CAR) 유전자를 넣는다. 이후 일정한 세포 수에 도달할 때까지 배양하고 품질시험을 마친 다음 냉동·운송해 다시 환자에게 투여한다.
환자마다 별도의 제품을 만들어야 하므로 일반 의약품처럼 한 번에 대량생산하기 어렵다. 환자의 질병 상태와 이전 치료 이력, 채취된 T세포의 수와 기능, 배양조건, 제조시설의 생산능력, 운송 일정 등 다양한 변수가 제품 품질과 제조 성공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4년 CAR-T 제품 개발 지침에서 환자 또는 기증자 유래 세포의 차이와 다단계 제조공정이 제품 간 변동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조사는 세포 생존율과 수, 세포 구성, CAR 발현, 효력, 미생물 오염 등 주요 품질속성을 공정 단계마다 관리해야 한다.
자가 CAR-T에서는 세포의 주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하는 '신원 연계성'도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환자에게서 채취한 세포가 생산시설과 병원을 오가는 동안 다른 환자의 제품과 뒤바뀌지 않도록 복수의 식별자를 부여하고, 투여 직전까지 반복 확인해야 한다.
수주간의 기다림과 림프구감소요법…환자 부담도 만만찮아
시간도 문제다. 기존 체외 CAR-T의 세포 조작과 배양에는 통상 2~4주가 소요된다. 여기에 채취 일정과 운송, 출고시험, 입원 준비까지 더하면 실제 치료까지 기다리는 기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빠르게 진행하는 혈액암 환자는 CAR-T가 완성되기 전에 질환이 악화될 수 있어, 대기기간 동안 종양을 억제하는 브리징 치료가 필요하기도 한다.
치료 전 림프구감소요법도 환자 부담을 키운다. 일반적으로 CAR-T를 투여하기 전 기존 림프구를 줄여 새로 투여되는 세포가 몸속에서 증식할 공간을 확보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골수억제와 감염 위험을 높일 수 있고, 이미 여러 치료를 받은 환자에게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채혈·배양 없이 정맥투여…환자의 몸이 '세포 공장' 된다
체내 CAR-T가 노리는 것은 이 복잡한 과정의 대폭적인 축소다. 환자의 T세포를 채취해 외부에서 조작하는 대신, CAR 유전정보를 담은 전달체를 정맥으로 투여한다. 전달체가 환자의 몸속 T세포를 찾아가 유전물질을 전달하면 해당 세포가 CAR를 발현하고 증식해 암세포나 비정상 면역세포를 공격한다.
체외 CAR-T와 체내 CAR-T 제조과정 비교 [인포그래픽=헬스코리아뉴스]현재 주요 전달체는 표적화한 렌티바이러스 벡터와 LNP다. 렌티바이러스는 CAR 유전자를 T세포 유전체에 삽입해 비교적 오래 발현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LNP는 mRNA를 세포질에 전달해 CAR 단백질을 일정 기간만 발현하게 한다.
세포 채취와 체외 배양은 생략되지만, 바이러스 벡터나 LNP 자체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환자에게 투여할 전달체는 우수의약품제조·품질관리기준(GMP)에 따라 외부 제조시설에서 생산하고, 순도와 역가, 안정성 등을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공장 없이 만드는 CAR-T'라는 표현은 의약품 생산시설 자체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환자 한 명마다 세포를 채취하고 유전자 조작·배양하는 별도의 세포 제조공정을 없애고, 여러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전달체를 산업적으로 생산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맞춤형 치료제를 기성품처럼…비용·접근성 혁신 기대
생산방식도 달라진다. 기존 자가 CAR-T는 환자 수가 늘면 그만큼 독립된 제조공정을 추가해야 하는 '규모 확장' 방식이다. 체내 CAR-T는 한 번 생산한 벡터나 LNP 배치로 여러 환자를 치료할 수 있어, 생산량 자체를 키우는 일반 의약품형 '대량생산'에 더 가까워질 가능성이 있다.
2026년 체내 CAR-T의 규제 전망을 분석한 연구진은 환자별 세포 배양이 사라지면 제조·물류 비용을 크게 낮추고 치료 접근성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일부 분석에서는 전달체 생산기간을 약 1.5~3주로 단축하고 치료 과정당 비용을 50% 이상 낮출 가능성이 제시됐다. 환자별 세포 제조가 필요하지 않아 완성된 벡터나 LNP를 보관했다가 사용할 수 있다면 실제 환자의 치료 대기기간은 더 짧아질 수 있다. 아직 상용화된 제품이 없는 만큼 이는 개발단계의 추정이다.
접근성도 달라질 수 있다. 현재 CAR-T는 숙련된 인력과 세포 처리시설, 중증 독성 관리역량을 갖춘 전문병원에서 주로 투여된다. 체내 CAR-T가 기성형 정맥주사 치료제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하면 제조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나 국가에서도 치료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
적응증 확대도 기대되는 변화다. 기존 CAR-T는 주로 재발·불응성 혈액암에 사용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전신홍반루푸스와 전신경화증, 근염 등 자가면역질환에서 비정상 B세포를 제거해 면역체계를 재구성하는 접근이 주목받고 있다. 세포 제조비용과 치료 부담이 낮아지면 암뿐 아니라 만성 자가면역질환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체내 CAR-T는 단순히 기존 CAR-T를 주사제로 바꾼 기술이 아니다. 기존 방식에서는 완성된 CAR-T 세포를 환자에게 넣지만, 체내 방식에서는 치료의 출발물질만 투여한 뒤 실제 세포의 생성과 증식을 환자의 생물학적 환경에 맡긴다.
환자마다 T세포의 수와 기능, 질병 상태, 이전 치료 이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양의 벡터나 LNP를 투여해도 만들어지는 CAR-T의 수와 지속기간은 달라질 수 있다. 몸속 제조가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혁명이 될지, 새로운 변동성과 위험을 낳을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2025년 사람 대상 초기 임상에서 체내 생성된 CAR-T가 실제 혈액과 골수, 종양조직에 도달하고 치료반응을 유도한 사실은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체내 CAR-T는 이제 실험실의 구상을 넘어 임상적 검증대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