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측시장 거래소 칼시(Kalshi)가 현지시간 16일 후기 임상시험 결과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여부를 사고파는 계약을 출시했다. 초기 계약 대상에는 아리바이오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물질 'AR1001'이 포함돼 국내 증시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미국에서 신약 임상시험의 성패와 식품의약국(FDA) 승인 여부에 판돈을 거는 합법적 예측시장이 열리면서 국내 바이오업계와 주식시장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모아진다.
미국 예측시장 거래소 칼시(Kalshi)는 현지시간 16일 바이오 예측시장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후기 임상시험 결과와 FDA 승인 여부를 사고파는 계약들을 출시했다.
초기 계약 대상에는 국내 바이오기업 아리바이오가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물질 'AR1001(성분명: 미로데나필·mirodenafil)'이 포함됐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신약의 임상 성공 가능성이 미국 예측시장에서 실시간 가격으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칼시는 이 시장이 일부 전문가와 기관에 집중돼 있던 임상 정보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약가격은 과학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산출된 임상 성공 확률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거래로 형성된 시장의 기대치다.
환자의 생명과 치료 기회가 걸린 임상시험을 투기 상품으로 만들었다는 윤리적 비판과 함께, 소수 자금에 의한 가격 조작과 내부정보 이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미국 예측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국내 투자자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수용될 경우 아리바이오와 지분·사업 관계로 연결된 소룩스와 삼진제약 등 국내 상장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3상 성공·FDA 승인에 각각 베팅…AR1001은 '1차 평가지표 달성'이 기준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은 특정 사건의 결과를 '예' 또는 '아니오'로 예측해 계약을 사고파는 구조다. 계약에서 정한 결과가 적중하면 계약당 1달러를 받고, 틀리면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가령 '예'를 선택한 계약이 0.30달러에 거래된다면 시장 참여자들의 거래 결과가 해당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약 30%로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다.
칼시가 새롭게 시작한 바이오 예측시장은 '임상 3상 목표 달성 여부'와 '정해진 기한 내 FDA 승인 여부'를 별개의 계약으로 나눠 거래한다.
AR1001은 FDA 승인 여부가 아니라 글로벌 임상 3상 '폴라리스-에이디(POLARIS-AD)'가 사전에 설정한 1차 평가지표(Primary Endpoint)를 충족할지가 계약의 판단 기준이다.
AR1001과 함께 초기 거래 대상에 오른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다발골수종 치료제 '아니토셀(anito-cel)' 등 일부 후보물질은 FDA 최종 승인 여부가 계약으로 설정됐다.
AI 데이터 기업과 손잡고 '공개 기록'으로만 승패 판정
칼시는 공공기록 정보분석기업 어플라이드엑스엘(AppliedXL)과 협력해 바이오 예측시장을 설계했다.
양사는 제약사의 주관적인 홍보성 발표에 계약 결과가 좌우되지 않도록 인공지능(AI) 기반의 컴퓨터 저널리즘 기술을 활용해 공개된 기록과 사전에 정한 객관적 기준으로 결과를 판정한다는 방침이다.
임상시험 관련 계약은 미국 임상시험 등록사이트인 ClinicalTrials.gov에 등록된 시험 설계와 평가지표를 기준으로 삼는다. FDA 승인 관련 계약은 FDA의 공식 문서와 승인 기록, 자문위원회 표결 결과 등을 토대로 판정한다.
제약사가 보도자료를 통해 임상 결과를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더라도 사전에 설정한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하면 예측시장에서는 실패로 판정돼 '예' 계약을 보유한 참여자는 돈을 잃게 된다.
탑라인 발표 앞둔 아리바이오…국내 관련주 영향 주나
AR1001은 포스포디에스테라제-5(PDE-5)를 억제해 뇌혈류 개선 등을 유도하는 기전의 경구용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물질이다. 아리바이오는 지난 6월 말 13개국 153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임상 3상 투약을 모두 마쳤으며, 조만간 핵심 요약 결과인 탑라인(Top-line) 데이터를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아리바이오는 지난 5월 중국 푸싱제약과 최대 47억 달러(한화 약 7조 원) 규모의 글로벌 독점 옵션 및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선급금을 수령한 바 있다. 그러나 남은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을 수령하고 계약이 최종 단계까지 이행되려면 이번 글로벌 임상 3상의 성공이 필수 전제조건이다.
결국 미국 예측시장에서 형성되는 실시간 가격은 '최대 7조 원 규모의 계약이 최종 단계까지 이행될 수 있을 것인가'를 바라보는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를 보여주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기술수출 이후에도 AR1001의 임상 결과와 향후 FDA 승인 여부가 국내 증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현재 코스닥 상장사 소룩스는 아리바이오와의 흡수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코스피 상장사 삼진제약은 AR1001의 국내 임상 3상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국내 독점 생산·판매권을 확보한 전략적 동반자다.
공식 임상 결과가 나오기 전 칼시의 '예' 계약가격이 급등하면 국내 투자 커뮤니티에서 AR1001의 임상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신호로, 반대로 급락하면 성공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경우 실제 임상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소룩스와 삼진제약 등 관련 종목의 투자심리가 계약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다만 예측시장의 계약가격과 국내 상장사의 주가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거래 규모와 참여자 구성, 유동성 등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초기 시장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기술수출 협상 보조지표 가능성…후보물질 가치 왜곡 우려도
일각에서는 이 시장이 안착할 경우 국내 바이오벤처의 기술수출(L/O) 협상에서 보조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해외 제약사나 투자기관이 예측시장 가격을 통해 특정 후보물질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를 파악하는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유동성이 낮은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과도하게 신뢰해 정밀한 기술실사(Due Diligence)를 대신할 경우 후보물질의 가치가 오히려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임상시험 설계와 세부 데이터, 경쟁약물 대비 효능과 안전성, 제조공정과 특허, 시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기술실사와 달리 예측시장 가격은 참여자들의 거래 심리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지표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패'에도 돈 거는 시장…내부정보 거래 우려
윤리적 논란과 내부정보 악용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시장은 신약의 성공이나 FDA 승인뿐 아니라 임상 실패와 승인 거절에도 베팅할 수 있다. '아니오' 계약을 구매하면 신약이 실패했을 때 수익을 얻는 구조다.
환자의 생명과 치료 가능성이 걸린 임상시험을 두고 주식시장의 공매도보다 직관적인 '실패 베팅판'이 만들어진 셈이다. 계약가격이 급격하게 움직일 경우 임상시험에 참여 중인 환자나 의료진의 심리를 동요시켜 임상시험 환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공개 중요정보를 접할 가능성이 있는 제약사 임직원과 임상시험수탁기관(CRO), 통계 분석 담당자, 연구자 등이 다른 사람의 명의를 이용해 거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칼시는 고용관계 확인 등을 통해 내부정보를 보유한 관계자의 거래를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세계 각국의 제약사와 CRO, 연구기관, 외부 협력사 관계자까지 감시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적은 자금으로 가격 흔든 뒤 국내 관련주 거래 가능성
교차시장 교란 가능성도 문제로 꼽힌다.
거래량이 적은 예측시장의 특성을 악용해 비교적 적은 자금으로 칼시의 계약가격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린 뒤 국내 주식시장에서 관련 종목을 공매도하거나 미리 매도해 이익을 취하는 시나리오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반대로 '예' 계약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임상 성공 기대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게 한 뒤 국내 관련주 매수를 유도하는 방식의 가격 왜곡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실제 조작 사례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 예측시장의 계약가격과 국내 관련 종목의 주가가 동시에 급격하게 움직일 경우 양 시장 사이의 연관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발 실시간 계약가격이 국내 바이오기업과 관련 상장사의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변수가 된 만큼 금융당국과 제약·바이오업계도 가격 왜곡과 내부정보 거래, 교차시장 교란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오 예측시장이 신약개발의 정보 격차를 줄이는 새로운 참고지표로 자리 잡을지, 임상시험과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또 하나의 투기 수단으로 변질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아리바이오의 신약이 초기 거래 대상에 포함된 만큼 국내 바이오업계와 증시도 이 시장의 움직임을 더 이상 남의 일로만 보기는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