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헬스케어가 도입한 헬스케어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 개념도. [자료=마이크로소프트][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암 치료에서 인공지능(AI)이 의사의 진단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최적의 치료 전략을 설계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암 환자 데이터를 분석해 치료 전략을 먼저 제시하는 '치료 설계자' 역할을 맡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여러 진료과 의사가 머리를 맞대던 다학제 종양위원회(Tumor Board)는 각 진료과를 대표하는 AI들이 서로 의사소통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암 치료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에이전틱 AI(agentic AI,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판단·실행까지 수행하는 주도적 AI) 개발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것이 우리 정부와 기업의 또 다른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런 흐름은 향후 암 연구와 치료 방향을 가늠하는 자리로 평가되는 AACR(미국암연구학회)과 ASCO(미국임상종양학회) 무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ASCO 브레이크스루에서는 에이전틱 AI의 역할 확대가 정식 세션 발표 주제로 선정되며 큰 비중으로 다뤄졌다.
<'ASCO 브레이크스루'란?>
세계 최대 규모의 암 학회인 미국임상종양학회(ASCO)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암 연구 활성화와 기술 융합을 위해 마련한 '지역 특화형 혁신 학술대회'다. 미국 본회가 방대한 임상 데이터 중심 무대라면, 싱가포르 브레이크스루는 AI, 액체생검 등 첨단 기술을 실제 암 환자 치료 현장에 어떻게 빠르게 배달(Delivery)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인프라가 부족한 아·태 지역의 의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글로벌 석학과 바이오텍이 모여 임상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는 데 중점을 둔다.
먼저 4월 미국암연구학회(AACR) 연례회의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AI 단독 플레너리 세션이 개설되며 '암 연구자 및 종양내과 의사로서의 에이전틱 AI' 주제 발표가 편성됐다. AI가 플레너리 세션의 메인 주제가 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사례였다. 이어 5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본회에서는 글로벌 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AI 에이전트의 임상 의사결정 유효성을 검증하며 논의를 한층 심화했다.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 'ASCO 브레이크스루 2026(ASCO Breakthrough 2026)'도 첨단 AI 기술을 실제 임상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접목(Translation)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학회 둘째 날 열린 에이전틱 AI 특별 세션에서는 아르셀라 프렐라이(Arsela Prelaj) 이탈리아 국립암연구소 박사가 발표를 진행했으며, 종양위원회에서 의료진 역할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는 에이전틱 AI의 작동 방식을 설명했다.
발표에 따르면 암 치료 현장의 에이전틱 AI는 가상의 AI 암 전문가들이 다각도로 물밑 검토를 수행한 뒤, 의사들이 참여하는 종양위원회에 환자 맞춤형 정밀 의료 옵션을 먼저 제시한다. AI가 먼저 제안하고 인간 의사가 최종 결정하는 협진 패러다임이 임상 현장의 '뉴 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학회 외에 실제 의료 현장 적용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헬스케어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를 스탠퍼드 헬스케어 등 미국 주요 암센터가 도입해 시범 운영 중이다. 특히 스탠퍼드는 연 4000명의 종양위원회 환자를 대상으로 이미 AI가 생성한 임상 요약을 활용하고 있다. 여러 특화 에이전트가 영상·병리·유전체·진료기록을 나눠 분석하고, 임상시험 적격성과 치료 지침까지 검토하면서 분석 시간을 수시간에서 수분으로 줄였다. 아직 실시간 임상 진료에 정식 배치된 단계는 아니지만, 스탠퍼드는 전체 4000건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검증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관건은 확산 속도다. 실증 사례가 축적되면서 에이전틱 AI의 임상 도입은 시범 단계를 넘어 일상 진료로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검토 시간을 시간 단위에서 분 단위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은 만성적인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겪는 의료기관에 강력한 유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시장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헬스케어 에이전틱 AI 시장은 지난해 14억 5000만 달러(약 2조 2000억 원)에서 연평균 34.61% 성장해 오는 2034년 197억 1000만 달러(약 30조 2500억 원)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