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스클레티스 파마(Ascletis Pharma) 본사 전경 (사진 출처=아스칼레티스)[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비만치료제 개발의 초점이 단순히 약물 자체의 성능을 넘어 체내에서 약물을 얼마나 안정적이고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지에 맞춰지고 있다. 주 1회 투여를 넘어 월 1회 투여 제형이 등장한 가운데, 최근에는 체내에 약물 저장공간을 스스로 형성하는 새로운 개념의 장기지속형 기술이 미국 임상시험에 진입해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홍콩 제약사 아스칼레티스 파마(Ascletis Pharma)는 23일(현지시간) 자사의 월 1회 피하주사(SC) 제형 비만치료 후보물질 'ASC35'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 1상 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ASC35'는 GLP-1 수용체와 GIP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이중 펩타이드 작용제다. 업계의 관심은 약물 자체보다 약물이 체내에 흡수되는 방식에 쏠리고 있다.
체내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약물 저장고'
진지 제이슨 우(Jinzi Jason Wu) 아스칼레티스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승인을 월 1회 제형뿐 아니라 분기 1회 투여 후보물질까지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이정표로 평가했다.
이 같은 자신감의 이면에는 아스칼레티스의 초장기 지속형 플랫폼(ULAP) 기반 '자가조립 지질 저장소(SALD, Self-Assembling Lipid Depot)' 기술이 있다.
회사에 따르면 'ASC35'는 투여 전에는 주사기 안에서 점성이 낮은 액체 상태를 유지하지만, 피하주사 후에는 체내 환경과 반응해 젤(gel) 형태의 저장소를 형성한다. 이후 이 저장소가 효소에 의해 서서히 분해되면서 약물을 한 달 이상 지속적으로 방출하도록 설계됐다.
장기지속형 비만치료제의 핵심 과제는 단순히 투약 간격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약물이 한꺼번에 방출되면 혈중 농도가 급격히 상승해 메스꺼움이나 구토 등 위장관계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방출 속도가 일정하지 않으면 기대한 치료 효과를 유지하기 어렵다.
결국 장기지속형 주사 제형 경쟁의 핵심은 투여 주기(간격)보다 약물 방출 속도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제어하느냐에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펩트론과 다른 접근법… 장기지속 플랫폼 경쟁 주목
국내에서는 펩트론(Peptron)이 스마트데포(SmartDepot) 플랫폼을 기반으로 장기지속형 의약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펩트론이 균일한 미립구(microsphere)에 약물을 담아 일정하게 방출되도록 제어하는 방식이라면, 아스칼레티스의 SALD 기술은 투여된 액체가 체내에서 스스로 저장소를 만들고 그 저장소가 분해되면서 약물을 서서히 일정하게 방출하는 방식이다.
펩트론이 약물을 담는 입자 자체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접근이라면, 아스칼레티스는 체내에 약물이 머무를 공간을 형성하는 새로운 개념의 전달 기술을 개발한 셈이다.
비만치료제 시장이 확대되면서 향후 경쟁력은 약물의 효능뿐 아니라 투약 편의성과 지속성, 부작용 관리 능력까지 포함한 약물 전달 플랫폼 기술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임상서 티르제파티드 대비 우위 확인
아스칼레티스가 공개한 전임상 결과도 관심을 끈다. 회사 측에 따르면 비인간 영장류 연구에서 'ASC35'의 평균 관찰 반감기는 기존 '티르제파티드(Tirzepatide, 제품명: 젭바운드·Zepbound)' 피하주사 제형보다 약 6배 길게 나타났다.
식이유도비만(DIO) 마우스 모델에서는 동일한 몰 농도로 투여했을 때 '티르제파티드' 대비 71% 높은 체중감량 효과를 보였다.
아스칼레티스는 이번 임상 1상에서 'ASC35'를 월 1회 투여한 뒤, 현재 FDA 승인을 받은 '티르제파티드' 주 1회 제형과 효과 및 안전성을 비교 평가할 계획이다.
업계는 이번 임상을 단순한 신약 후보물질 검증 차원이 아닌, 차세대 장기지속형 약물 전달 플랫폼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험대로 주목하고 있다. 비만치료제 시장의 경쟁 축이 약물 성분에서 제형 기술 확대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