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어제의 혁신이 오늘의 구식이 된다."
비만 치료제 시장의 시계가 유례없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2020년 'GLP-1' 수용체 작용제가 전 세계를 뒤흔든 지 불과 6년 만에, 시장은 벌써 아밀린(Amylin) 작용제라는 제3의 격전지로 급속히 이동하는 모습이다.
판이 바뀔 때마다 수십 조 원의 '노다지'가 터진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광속 세대교체'를 밀어붙이는 이유다.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는 'GLP-1'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주사제와 경구제에 이어, '아밀린' 작용제를 연달아 투입하며 후발주자들이 따라올 틈조차 주지 않는 '초격차'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릴리·노보, 1·2위 굳히기 넘어 '경구제' 시장까지 선점
현재 전세계 의약품 시장은 비만치료제가 휩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5년 의약품 매출 순위에서 미국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GLP-1+GIP 이중 작용 비만치료제 '마운자로(Mounjaro, 성분명: 터제파타이드·tirzepatide)'는 전년(115억 달러, 한화 약 17조 원) 대비 약 99% 성장한 229억 달러(한화 약 34조 원)를 기록하며 2위에 안착했다.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GLP-1 단일 작용 비만치료제 '오젬픽(Ozempic, 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도 196억 달러(한화 약 29조 원)의 매출로 단숨에 3위를 꿰찼다. 이들 품목은 모두 주사제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등극했다.
최근에는 경구용 비만치료제 열풍이 거세다. '오젬픽'과 동일 성분의 약물인 '위고비(Wegovy)'가 2025년 12월 사상 첫 체중 감량용 경구 GLP-1 작용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올해 4월에는 릴리의 경구용 GLP-1 작용제 '파운다요(Foundayo, 성분명 :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까지 FDA 허가를 받으며 알약 시장의 경쟁은 한층 가열되는 양상이다.
제3지대 향하는 비만치료제 시장, '아밀린' 작용제 상업화 눈앞
그런데 글로벌 비만약 시장의 무게 중심은 벌써 제3지대를 향하고 있다. 경구용 GLP-1 작용제의 투약 편의성 경쟁을 넘어, 주사제 기반의 아밀린(Amylin) 작용제가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것.
아밀린은 췌장에서 인슐린과 함께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아밀린 작용제는 뇌간의 수용체와 결합해 위장 배출 속도를 늦추고 포만감을 유도하는 기전이다.
아밀린 작용제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 약물의 고질적인 한계인 구토 부작용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사실이다.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해 인위적으로 식욕을 억제하는 GLP-1 작용제와 달리, 위장 배출 지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포만감을 유지하며 체중을 감량하도록 돕는다.
새로운 시장 역시 릴리와 노보 두 회사가 주도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GLP-1과 아밀린을 결합한 복합제 '카그리세마(CagriSema)'의 3상 임상을 마치고 지난해 12월 FDA에 허가 신청서까지 제출해 놓은 상황. 여기에 맞서 일라이 릴리는 아밀린 단독 작용제인 '엘로랄린타이드(eloralintide)'에 대한 다수의 3상 임상을 진행 중이다. 출시 예정 시기는 2028년 하반기다.
'인터페이스' 바뀔 때마다 터지는 천문학적 수익
비만 치료제 시장의 가파른 세대교체는 항암제 등 다른 의약품 시장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항암제 시장의 경우, 여전히 면역 항암제가 독보적인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대사 항암제나 항체약물접합체('ADC'), 이중특이성 항체(BsAb, Bispecific Antibody) 같은 차세대 기술은 장기적인 임상 데이터를 축적하며 신중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생명과 직결된 항암 치료의 특성상 안전성과 유효성이라는 '신뢰 자본'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비만 치료제 시장은 약물 전달 체계(제형)나 작용 기전 등 인터페이스(치료 패러다임)가 변경될 때마다 시장 파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구조다. 단순히 편리한 약을 만드는 것을 넘어, 새로운 기전을 도입해 부작용을 줄이거나 투약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 자체가 천문학적인 추가 수익으로 직결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환자가 약물을 경험하는 접점, 즉 인터페이스를 선점하는 것이 곧 새로운 블록버스터의 탄생을 의미하는 '노다지' 시장인 셈이다.
실제로 경구용 '위고비'와 '파운다요'는 물론, '카그리세마'와 '엘로랄린타이드' 모두 각각 100억 달러(한화 약 14조 원) 이상의 최고 매출액을 거둘 블록버스터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후발주자 추격 의지 꺾는 선두 기업들의 '속도전'
문제는 이러한 가파른 혁신이 후발주자들에게는 거대한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마운자로'나 '오젬픽'을 잇는 제3의 체중 감량용 'GLP-1' 작용제 중 상용화에 성공한 사례는 지난 3월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의 허가를 받은 중국 사이윈드 바이오사이언스(Sciwind Biosciences)의 '에크노글루타이드(ecnoglutide)'가 유일할 정도다.
결과적으로 후발 기업들이 이제 막 주 1회 주사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사이, 선두 기업들이 경구제를 넘어 '아밀린' 작용제라는 3차전 고지에 깃발을 꽂으면서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은 잔혹한 속도전의 전장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