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기자] 미국의 한 연구팀이 대표적 난치병으로 분류되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을 사전에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 가능성을 제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기존 치료제가 체내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수준이었다면, 이번 연구는 바이러스의 세포 침투 경로 자체를 폐쇄하는 근본적인 접근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팀은 DNA를 정밀하게 잘라내거나 바꿀때 사용하는 크리스퍼(CRISPR) 기술을 활용해 HIV 감염 기전을 분석한 연구 논문을 지난 20일(현지 시간) 국제 학술지 셀(Cell)에 게재했다.
흔히 에이즈(AIDS) 바이러스로 불리는 HIV는 체내 면역 세포에 침투해 면역 기능을 저하시킨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 체계가 무너지면서 각종 세균 및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지게 된다.
◇기존 항바이러스제의 한계와 '카베누바'의 등장
현재 HIV 감염의 표준 치료법은 두 가지 이상의 항바이러스제를 혼합해 사용하는 칵테일 요법이다. 매일 경구제를 복용함으로써 바이러스의 활성을 건강한 성인과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1년에 두 번만 주사해도 바이러스 활성을 조절할 수 있는 영국 GSK의 '카베누바'(Cabenuva, 성분명 : '카보테그라비르'+'릴피비린'·Cabotegravir+Rilpivirine)까지 허가를 받으며 편의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IV 감염은 여전히 불치병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의 치료법들은 꾸준한 약물 복용을 통해 체내 바이러스 수치를 일정 수준 이하로 억제하는 것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퍼 기술로 찾아낸 감염 핵심 통로 'PI16·PPID'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혈액에서 직접 추출한 T세포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교정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HIV와 숙주 세포인 T세포간의 상호작용 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2만 개 이상의 유전자 정보를 확보하고, 각 유전자의 역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유전자 가이드 세트를 구축했다. 이후 해당 유전자 정보 물질들이 각각 하나씩 결여된 세포들에 HIV를 노출시킨 결과, 'PI16' 및 'PPID' 유전자가 제거된 상태에서만 세포들이 감염되지 않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는 'PI16' 및 'PPID' 유전자가 HIV 감염의 핵심 통로이자 경로라는 의미다.
이번 발견은 향후 'PI16'과 'PPID'를 정밀하게 제어하거나 그 기능을 차단하는 유전자 치료 기법을 고안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는 단순한 증상 완화를 넘어 바이러스 감염 기전 자체를 무력화하는 근본적인 예방 및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데 핵심적인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연구를 이끈 알렉스 마슨(Alex Marson) 박사는 "40년 넘게 인류를 위협해온 HIV가 실제 T세포에 어떻게 침투하고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정밀 지도를 갖게 됐다"며 "새롭게 발견된 유전자들은 인체의 면역 체계가 바이러스 침입에 저항하도록 돕는 차세대 유전자 치료제 개발의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