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헬스코리아뉴스 D/B][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국내에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의 패러다임을 바꾼 P-CAB(칼륨 경쟁적 위산분비 억제제) 신약 '케이캡(성분명: 테고프라잔)'이 척수손상(SCI) 후 발생하는 치명적인 신경 염증까지 잠재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약물 재창출'을 통한 난치성 질환 치료의 새로운 길이 열릴지 주목된다.
23일 헬스코리아뉴스 취재에 따르면, 분당차병원, 충북대병원, 강북삼성병원 공동 연구팀은 동물실험을 통해 케이캡이 대표적인 척수손상 치료 약물인 메틸프레드니솔론에 버금가는 항염증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척수손상은 질병이나 외상에 의해 척추 내에 존재하는 중추신경계인 척수에 손상이 생겨, 척수가 지배하는 하지 및 상지의 운동, 감각과 자율신경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질환을 의미한다. 초기 외상 이후 염증, 산화 스트레스, 신경 세포 사멸을 포함한 이차적인 병리 반응을 촉발하는데, 이는 환자의 예후에 악영향을 미치고 회복을 더디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는 척수손상 급성기에 스테로이드 제제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을 사용하고 있지만, 고용량 스테로이드 투여에 따른 위장관 출혈, 패혈증, 폐렴 등 심각한 합병증 위험이 뒤따라서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큰 상황이다.
케이캡은 위산 분비 억제제로 위식도 역류 질환(GERD)이나 위궤양 치료 등에 사용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MAPK 신호 전달 경로 중 p38 및 c-Jun N-말단 키나아제(JNK) 경로를 통해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것으로 보고되는 등 항염증 치료제로서 잠재력을 나타낸 바 있다.
공동 연구팀은 이러한 점에 착안, 케이캡이 척수손상에 따른 염증 반응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연구를 진행했다. 이는 척수손상 후 케이캡의 항염증 효과를 평가한 첫 번째 연구다.
연구팀은 암컷 쥐의 T9 흉추 부위에 척수손상을 유발한 뒤 이를 약물을 투여하지 않은 대조군, 메틸프레드니솔론 투여군, 그리고 테고프라잔 투여군 등 세 그룹으로 나눠 14일간 경과를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케이캡은 운동기능의 회복 정도를 나타내는 BBB(Basso, Beattie, and Bresnahan) 점수가 대조군 대비 비약적으로 상승했으며(p<0.05), 메틸프레드니솔론 투여군과 비교해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을 만큼 우수했다.
이는 테고프라잔이 위험한 고용량 스테로이드 없이도 신경 보호 및 재생을 돕는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러한 회복의 근거를 분자 수준의 항염증 기전에서 찾았다. 테고프라잔은 염증을 일으키는 M1 대식세포의 마커인 iNOS 발현은 억제하고, 조직 수복을 돕는 M2 대식세포 마커인 CD206의 발현은 유도하는 능력을 보였다.
실제로 qRT-PCR 분석 결과, 케이캡은 대표적인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인 IL-6, IL-1β, TNF-α의 발현을 강력하게 억제했다. 반대로 항염증 지표인 IL-10과 Arg-1은 유의미하게 증가시켜, 염증을 단순히 차단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인 조직 재생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항염증 효과의 핵심 기전으로는 'Kv1.3 채널' 억제가 지목됐다. Kv1.3은 활성화된 면역 세포에서 고발현돼 염증 반응을 증폭시키는 전압 의존성 칼륨 채널이다. 테고프라잔은 P-CAB 제제 특유의 칼륨 경쟁적 결합 특성을 활용해 이 채널의 발현을 낮추고, 하부 신호 전달 체계인 MAPK와 NF-κB의 활성화를 차단했다.
특히 케이캡은 대조군과 메틸프레드니솔론 투여군에 비해 Kv1.3의 단백질 발현량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낮았다(p<0.01). 이는 스테로이드가 가진 포괄적인 면역 억제와는 차별화된 케이캡만의 기전이 존재할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케이캡은 14일간의 투여 기간 중 체중 변화나 이상 행동 등 전신 독성이 관찰되지 않아 안전성 측면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연구 결과는 케이캡이 항염증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척수손상의 새로운 치료법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케이캡이 소화기 내과를 넘어 신경과나 응급의학 분야에서도 핵심적인 치료 옵션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Discovery Medicine'에 최근 게재됐다.
한편, HK이노엔의 케이캡은 지난 2019년 출시돼 올해 7년 차를 맞은 P-CAB 신약이다. 출시 3년 차인 2021년 단일품목 최초로 원외처방액 1000억 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179억 원의 원외처방액을 기록하며 2000억 원 벽도 깼다.
케이캡은 글로벌 진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해외 53개국과 케이캡 기술 수출 또는 완제수출 계약을 체결했으며, 국내를 포함해 중국, 중남미 등 18개국에 케이캡을 출시했다. 올해 1월에는 미국 FDA에도 허가 신청이 완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