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약국 약사가 환자에게 조제약 복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2025.10.11][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미국 정부의 의약품 가격 인하 정책의 역효과가 확산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국 병원협회(AHA)는 지난 10월 1일(현지 시간), 미국 로드 아일랜드 주법원에 제출한 '법정조언서'(Amicus Curie)를 공개했다.
그 내용은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340B 프로그램에 따라 병원 내부 약국뿐만 아니라 외부 계약 약국에도 의약품을 제한 없이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 수익성 남용 수단으로 전락
340B 프로그램은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지정된 병원에 의약품을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하는 정책이다. 1980년대 하반기부터 급증한 HIV 감염에 대응하기 위해 1992년 제정된 공중보건서비스법 제340B조(Public Health Service Act, Section 340B)에 의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기업들이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지정된 병원에 의약품을 할인 공급해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다. 현재 미국 전역에 약 5만 3000개의 지정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겉보기에는 정부가 약가 인하를 위해 내린 특단의 조치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을 뜯어보면 전혀 딴판이다.
가령, 병원은 기업으로부터 아무런 대가 없이 할인된 가격으로 의약품을 공급받고, 병원이 해당 약을 메디케어(Medicare) 같은 공보험 가입 환자에게 처방하면 정부는 정가 기준으로 상환금을 병원에 지급한다.
당시 정부의 목표는 병원의 재정적 부담을 덜어 저소득층 또는 취약 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취지였으나, 현재는 병원의 수익성 남용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기업들은 강제 할인으로 인한 수익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의약품의 정가를 올릴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미국의 높은 약가 형성에 기여한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한 와중 스위스 노바티스(Novartis) 등 일부 기업들은 병원 내부 약국이 아닌 외부 계약 약국에 대한 의약품 공급 제한을 시도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이 병원 공급만 강제하고 외부 기관 공급 의무는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로드아일랜드를 비롯한 몇몇 주정부는 외부 계약 약국 공급 역시 의무화하는 조치를 취했고 기업들은 이에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 AHA는 법정조언서를 제출하며 주정부와 약국에 힘을 실어주었다. 전미 병원을 대표하는 단체인 AHA가 약국 편을 든 것은 얼핏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병원과 약국이 계약을 통해 수익을 나눠 갖는 구조다.
일반적으로 법조인은 특정 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므로, 산업 관련 재판은 그 분야에 몸 담은 제3자의 법정조언서가 최종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증명하듯, AHA는 해당 법정조언서를 2025년 9월 16일 제출했고, 로드 아일랜드 주법원은 2주 뒤인 9월 30일 노바티스가 제기한 법안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노바티스는 현재 항소를 제기한 상황이다.
국내 바이오시밀러 업체에도 불똥 튀나
어찌되었든 340B 프로그램이 확대되면 환자의 의료 접근성이 높아지므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340B 프로그램이 바이오시밀러 도입에는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거 바이(Ge Bai) 미국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대학 보건 정책학 교수는 올해 9월, 미국 포브스(Forbes) 기고문을 통해 "병원 입장에서 값싼 바이오시밀러는 비싼 오리지널에 비해 상환금 차액이 낮기 때문에 처방 자체를 꺼리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주정부, 약국, 병원과 기업이 맞붙은 340B 프로그램 의약품 공급 제한 소송에서 만약 기업이 패소할 경우, 미국 내 바이오시밀러 확산은 한층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는 현재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동아에스티 등 국내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에게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때문에 미국 연방정부도 340B 프로그램에 칼을 빼들고 있다. 정부는 올해 7월 개혁안을 발표했는데, 기존의 사전 할인 방식이 아닌 병원이 약을 정가로 구매한 뒤 기업으로부터 사후 할인금을 돌려받는 것이 골자다.
병원에게 그 즉시 발생하는 차익이 사라지니 바이오시밀러 도입을 저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다만 해당 개혁안은 2026년 1월 1일부터 1년간 시범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에 불과하며, 상환금 차액 구조는 여전하므로 실효성에 의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