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국내에서 세포-유전자 치료제 연구가 탄력을 받고 있다. 정부의 꾸준한 기초연구 투자와 연구기관의 기술력 축적을 바탕으로 암·희귀질환 등 치료가 어려운 질환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속속 진행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지난달 이런 내용을 담은 '세포-유전자 치료제(Cell and Gene Therapy·CGT) 기초연구본부 선정 R&D 이슈 연구동향'을 펴냈다.
세포·유전자 치료제(Cell and Gene Therapy·CGT)는 우리 몸의 세포나 유전자를 활용해 병을 고치는 첨단 의약품으로,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환자 몸 밖으로 세포를 꺼내 유전자를 넣거나 고친 뒤 다시 주입하는 체외 치료법(ex vivo)과 치료 유전자를 몸 안에 직접 넣어 세포를 고치는 체내 치료법(in vivo)이다.
예를 들어, 환자의 면역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넣어 암세포를 공격하게 만든 CAR-T 세포 치료는 대표적인 유전자 기반 면역치료다. 세포-유전자 치료제는 기존 치료법으로는 어려웠던 유전질환이나 암 치료에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지만, 면역 반응이나 부작용 가능성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 5년간 100개 넘는 기초과제 지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9년부터 세포-유전자 치료제 기술 확보를 위한 기초연구 과제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2019년 16건(11억 원)을 시작으로, 2020년 17건(12억 원), 2021년 22건(16억 원), 2022년 25건(21억 원), 2023년 21건(20억 원) 등 총 101건의 과제가 5년간 진행됐다.
이처럼 꾸준한 예산 투입은 세포·유전자 기반 바이오기술의 전략적 육성을 뜻한다. 실제로 여러 국가 과제가 다양한 기술군으로 세분화되어 추진 중이다. 연구 범위는 유전자 교정 정확도 향상, RNA 전달체 개발 등 광범위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경북대학교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로 널리 쓰이는 CRISPR-Cas12a 시스템의 표적 특이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유전자 가위 구성물의 특정 염기서열 말단을 DNA로 치환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유전자만 정밀하게 절단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술은 다양한 유전자 가위 시스템에 응용이 가능하며 암 치료제, 유전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학교 연구팀은 유전성 시각질환인 레버 선천성 흑암시(LCA)의 원인인 RPE65 유전자 돌연변이를 교정하기 위해 염기 교정 유전자 가위(base editor)를 AAV 전달체에 실어 생쥐 모델에 적용했다. 그 결과, 돌연변이를 교정해 시력 회복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연구팀은 RNA 치료제의 전달 효율을 높이기 위한 이온화 지질을 개발했다. 이 지질은 pH 환경에 따라 성질이 변해 RNA 약물이 표적 세포에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돕는다. 해당 기술은 mRNA 백신 개발 및 상업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핵심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양대학교는 CAR-T 치료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고형암을 공략할 수 있는 CAR-대식세포(M1 macrophage)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CAR-T는 고형암에서 효과가 낮기 때문이다. CAR-대식세포는 식작용(phagocytosis)을 통해 고형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우리 몸에 장기 면역기억 효과를 만들어 암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체내에서 CAR-대식세포 생성을 유도시키기 위해 새로운 유전자 나노 복합체(MPEI/pCAR-IFN-γ)를 개발했는데 이는 광범위한 고형암 환자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CAR-T 및 면역세포 치료 중심의 기존 접근을 넘어서, 세포유전자 치료의 정밀도, 안전성, 적용 범위를 동시에 향상시키는 다각적인 시도로 평가된다.
세 가지 핵심 분야 중점 연구 필요
세포·유전자 치료제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전문가들은 세 가지 핵심 분야에 대한 중점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첫째, 더 안전하고 정밀한 유전자 전달체 개발이다. 기존 AAV 벡터의 부작용 사례를 고려할 때, 조직 특이적이며 비표적 효과를 줄일 수 있는 차세대 전달 기술이 절실하다는 분석이다.
둘째, 난치암과 희귀질환을 겨냥한 치료 기술 개발이 요구된다. 췌장암과 교모세포종 같은 고형암은 물론,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등 유전적 질환에 대응할 수 있는 면역세포 기반 치료법의 기초연구가 필요하다.
셋째, 배양 없이 빠르게 제조할 수 있는 치료제 기술 확보가 과제로 떠오른다. 현행 세포 치료제는 제작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체내(in vivo) 합성이나 초단기 배양 공정 등 생산 혁신이 요구된다.
이러한 연구들이 실현될 경우 국내 세포·유전자 치료제 분야의 경쟁력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