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정부가 "아프면 누구나 쉴 권리를 보장하겠다"며 내년 7월 도입을 목표로 했던 상병수당에 대해 사실상 무기한 연기 움직임을 보이자, 시민사회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상병수당은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없는 부상·질병으로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워진 경우,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소득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제도로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사항이자 국정과제의 하나다.
윤석열 정부는 2025년 7월 보편적 상방수당 제도 도입에 앞서 현재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범사업 1단계(10개 지자체)는 2022년 7월, 2단계(4개 지자체)는 2023년 7월부터 추진 중이며, 3단계(4개 지자체)는 오는 7월부터 시작한다.
서울 종로구, 경기 부천시, 충남 천안시, 경북 포항시, 경남 창원시, 전남 순천시 등 6개 지역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1단계 시범사업은 꽤 고무적이다. 1단계 사업 분석 결과를 보면, 2022년 7월 4일부터 12월 31일까지 6개월간 총 3856건의 신청을 받아, 2928건의 상병수당을 지급했다. 평균 지급 일수는 18.4일이고, 평균 지급 금액은 81만 5000원이었다.
수급자는 직장가입자가 2116명(72.3%)으로 가장 많았지만 자영업자 528명(18.1%), 고용·산재보험가입자 284명(9.7%) 등 치료 기간 중 소득 감소가 불가피한 자영업자 및 건설노동자, 택배·대리기사도 포함됐다. 연령별로는 50대가 39.1%(1144명)로 가장 많았다. 상병수당이 취약계층에게 든든한 사회보장의 울타리가 되고 있는 셈이다.
복지부는 역시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오랜 과제로 남아있던 상병수당을 도입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며, 국민들에게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하지만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은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고 있다. 2025년도에 제도화하기로 한 상병수당 본사업을 유보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 이 계획에서 정부는 당초 밝힌 것과 달리 2024년 3단계 시범사업을 하고 본사업 도입 년도인 2025년에는 통합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못박고 있다. 게다가 본사업도 통합시범사업 후 평가를 거쳐 오는 2027년 이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윤석열 정부 임기내에는 제도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시민사회는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 관계자는 16일 헬스코리아뉴스와의 통화에서 "3단계 시범사업이 시작도 되기전에, 정부의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 한 장 없이 은근슬쩍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 문서에 한 줄 끼워넣어 상병수당 제도화를 희석시켜 나가는 정부의 소통 방식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범사업 종료를 1년 넘게 남겨 둔 상황에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상병수당 제도화 유보 내용을 한 줄 명시한 것은 꼼수 행정으로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며, "상병수당 제도를 필요로 하는, 여전히 아픈 몸을 이끌고 일터로 향하고 있는 많은 노동자와 시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 소속의 다른 관계자는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대형병원 손실금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2조 원이나 메워주는 결정은 속전속결로 하면서, 노동자 시민들의 기본권인 아프면 쉴 권리 보장, 상병수당 제도화에는 한없이 더디고 인색한 정부를 규탄한다"며, "인내심을 갖고 3년을 기다렸는데, 더 이상의 유보나 연기는 용납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참여연대와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4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은 오는 5월 9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윤석열 정부의 상병수당 무력화 시도를 규탄하고 공론화한다는 방침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상병수당제도에 대한 법적 근거는 20년 전부터 국민건강보험법에 마련되어 있었다. 많은 국제기구에서도 오래 전부터 보편적 건강보장과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상병수당 제도 도입을 권고해 왔다. 이는 한국의 장시간 노동이 OECD 국가 중 최선두를 달리고 있는 현실과도 맞물려 있다.
아파서 쉰 날은 1.2일로 독일 11.7일, 프랑스 9.2일 등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짧다. 아파도 참고 일하는 사업장 분위기로 인해 제대로 쉬지 못하여 제 때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36개 OECD 가입국가 중 상병수당과 공적 병가가 없는 유일한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대유행을 통해 아픈 이들을 위한 소득보장제도인 상병수당제도 도입의 필요성 즉,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급속하게 확산되었고 정부는 2020년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통해 상병수당 시범사업 도입 입장을 밝혔다. 이어 2022년에 '2025년 보편적 상병수당 제도 도입을 목표로 '3단계 시범사업'과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은 '시범사업 기본계획'이 발표됐다.
시민사회 관계자는 "최근 복지부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상병수당 도입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윤석열 정부가 이 제도를 공약으로 내세울 때부터 의아스럽게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 제도 도입을 무력화할 줄은 미쳐 몰랐다"고 실망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