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식이섬유를 분해하는 장내세균이 만들어내는 대사물질이 장 상피세포에 지속적인 변화를 남겨, 해당 물질이 사라진 뒤에도 장의 항염증 면역반응을 유지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장내세균 대사물질인 부티레이트(butyrate)를 생쥐에 일시적으로 투여한 뒤 중단했는데도 항염증성 사이토카인인 인터루킨-10(IL-10)을 만드는 CD4 양성 T세포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유발한 대장염의 정도를 낮추는 효과로 이어졌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파인버그 의과대학(Northwestern University Feinberg School of Medicine) 연구팀은 장 상피세포가 장내 미생물에서 유래한 부티레이트를 감지한 뒤 면역세포와 장기간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기전을 규명했다.
연구결과는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Butyrate epigenetically licenses sustained epithelial-T cell crosstalk for intestinal immune tolerance'이다.
장내세균이 식이섬유를 분해해 만든 부티레이트가 장의 염증을 억제하는 면역반응을 오래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생성 이미지]부티레이트 끊은 뒤 2주 지나도 IL-10 증가 유지
부티레이트는 사람이 직접 만들어내는 물질이 아니다. 장내세균이 소화되지 않은 식이섬유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성하는 단쇄지방산(short-chain fatty acid, SCFA)의 하나다.
단쇄지방산은 조절 T세포 발달과 IL-10 생성 등 장내 면역조절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부티레이트는 대장에서 높은 농도로 존재하지만 장 상피세포에 빠르게 흡수·대사돼 전신에서는 농도가 크게 낮아진다.
연구팀은 생쥐의 식수에 부티레이트를 넣어 2주 동안 투여한 뒤 다시 2주 동안 일반 물을 마시게 했다.
그 결과 부티레이트 투여가 끝난 지 2주가 지난 뒤에도 대장 점막 고유판의 IL-10 생성 CD4 양성 T세포 비율은 투여 전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투여 직후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었다.
반면 부티레이트 투여 직후 증가했던 IL-17A, 인터페론감마(IFN-γ), IL-22를 생성하는 CD4 양성 T세포는 투여를 중단한 뒤 다시 기저 수준으로 돌아갔다. 연구팀은 부티레이트에 의한 지속 효과가 특히 IL-10 생성 면역반응에서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부티레이트 사라진 뒤에도 대장염 덜 심해
연구팀은 이러한 면역변화가 실제 장 염증에도 영향을 주는지 확인했다.
생쥐에 2주 동안 부티레이트를 투여한 뒤 2주간 중단하고, 이후 덱스트란황산나트륨(DSS)을 이용해 대장염을 유발했다.
부티레이트를 미리 투여받았던 생쥐는 대조군보다 체중 감소가 적었고, 장 염증과 관련된 칼프로텍틴(S100A8/A9)과 염증성 사이토카인 IL-6 수치도 낮았다. 대장 조직검사에서도 염증과 조직손상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연구진이 더 높은 농도의 DSS를 이용해 심한 대장염을 유발했을 때도 비슷한 보호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IL-10 수용체를 차단하자 부티레이트를 미리 투여한 생쥐에서 나타났던 체중 감소 억제와 염증 지표 감소, 조직학적 보호 효과가 사라졌다.
이는 일시적인 부티레이트 노출 이후 나타나는 장 보호 효과에서 IL-10 신호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장내세균 없어도 효과 지속
연구진은 부티레이트가 장내세균 구성을 바꾼 결과 이러한 효과가 지속되는 것인지도 확인했다.
부티레이트를 투여한 생쥐의 장내 미생물을 무균 생쥐에 이식했지만 IL-10 생성 CD4 양성 T세포는 증가하지 않았다.
반대로 장내 미생물이 아예 없는 무균 생쥐에 직접 부티레이트를 일시적으로 투여했을 때는 IL-10 생성 CD4 양성 T세포 증가가 투여 중단 후에도 유지됐다.
이는 지속적인 항염증 면역반응이 부티레이트에 의해 바뀐 장내세균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부티레이트에 노출됐던 장 조직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이어 면역세포가 없는 Rag1 결핍 생쥐에 부티레이트를 미리 투여했다가 중단한 뒤 새로운 CD4 양성 T세포를 주입했다.
이 경우에도 새롭게 주입된 T세포에서 IL-10 생성이 증가했다. 연구진은 부티레이트가 장에 장기간 유지되는 '면역관용 환경'을 형성한다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장 상피세포가 면역세포에 신호 전달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장 상피세포(intestinal epithelial cell, IEC)였다.
장 상피세포는 장 내용물과 인체 조직 사이에 위치해 장내세균과 그 대사물질을 가장 먼저 접하는 세포다. 장벽 역할뿐 아니라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연구진이 생쥐 장 상피세포에 부티레이트를 처리한 뒤 배양액을 CD4 양성 T세포에 적용하자 IL-10 생성이 농도 의존적으로 증가했다.
이 효과는 배양액에 남아 있던 부티레이트 때문이 아니었다.
장 상피세포는 처음 투여한 부티레이트의 98% 이상을 48시간 안에 소비했다. 남은 부티레이트와 비슷한 저농도의 부티레이트를 T세포에 직접 처리했을 때는 IL-10 생성이 증가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부티레이트에 노출된 장 상피세포가 새롭게 만들어낸 수용성 물질이 T세포의 면역반응을 바꾼 것으로 판단했다.
핵심 물질은 'N1-아세틸스페르미딘'
연구진은 부티레이트에 노출된 장 상피세포가 분비하는 물질을 분석해 면역조절 효과를 일으키는 후보 물질을 추적했다.
그 결과 분자량이 작은 수용성 물질에서 IL-10 생성 효과가 나타났고, 대사체 분석을 통해 N1-아세틸스페르미딘(N1-acetylspermidine)이 유력한 물질로 확인됐다.
논문에 따르면 부티레이트는 장 상피세포에서 Sat1 유전자의 전사 및 후성유전학적 활성을 지속적으로 증가시켰다.
Sat1은 스페르미딘을 아세틸화해 N1-아세틸스페르미딘을 생성하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다. 중요한 점은 Sat1 활성화가 부티레이트 투여가 끝난 이후에도 유지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부티레이트→장 상피세포의 Sat1 지속 활성화→N1-아세틸스페르미딘 생성→CD4 양성 T세포의 IL-10 증가로 이어지는 면역조절 경로를 제시했다.
이러한 장 상피세포의 지속적인 전사·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일종의 '기억'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람 T세포에서도 IL-10 증가
사람 세포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유사한 면역반응이 나타났다.
연구진이 사람의 말초혈액 CD4 양성 T세포에 부티레이트를 처리한 생쥐 장 상피세포의 배양액을 적용하자 IL-10 생성이 유의하게 증가했다.
동시에 IL-17을 만드는 Th17 세포와 IFN-γ를 생성하는 Th1 세포는 감소했다.
RNA 분석에서도 부티레이트에 노출된 장 상피세포에서 나온 물질을 처리한 T세포는 IL-10을 비롯한 면역조절 관련 유전자 발현이 증가하는 별도의 전사 특성을 보였다.
연구팀은 장 상피세포에서 나온 수용성 물질이 CD4 양성 T세포를 IL-10을 생성하는 면역조절형 세포로 재프로그래밍한다고 설명했다.
염증성장질환 치료 가능성은 추가 연구 필요
이번 연구는 장내세균 대사물질이 존재하는 동안에만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장 상피세포에 보다 오래 지속되는 변화를 만들어 이후의 면역반응까지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식이섬유에서 유래한 장내세균 대사물질과 장 상피세포, T세포 사이에 지속적인 면역관용 회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다만 이번 연구에서 대장염 억제 효과가 확인된 것은 생쥐 모델이다. 사람에서는 배양된 CD4 양성 T세포의 면역반응 변화가 확인됐을 뿐, 크론병이나 궤양성대장염 환자에서 치료 효과가 입증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번 결과만으로 식이섬유나 부티레이트 섭취가 사람의 염증성장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참고문헌] Tianming Yu, Wenjing Yang, Anthony J. Bilotta, et al. "Butyrate epigenetically licenses sustained epithelial-T cell crosstalk for intestinal immune tolerance." Nature Communications. 2026;17:8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