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부암 임상시험의 국가별 불균형을 분석한 연구가 국제학술지 《JAMA 네트워크 오픈》에 공개됐다. [사진=JAMA 네트워크 오픈 홈페이지 갈무리][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자궁경부암 발생과 사망 부담은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에 집중돼 있지만, 새로운 치료 기준을 만드는 임상시험은 상대적으로 질병 부담이 낮고 소득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 훨씬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와 필리핀 산토토마스대병원 공동연구팀은 30일 국제 오픈액세스 의학학술지 'JAMA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이 같은 내용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 제목은 '자궁경부암 임상시험의 세계적 격차(Global Disparities in Current Clinical Trials in Cervical Cancer)'다.
자궁경부암은 전 세계적으로 의료 불평등이 두드러진 암 가운데 하나다. 특히 발생률과 사망률이 높은 저소득·중간소득 국가가 임상시험에서 충분히 대표되지 못하면, 연구 결과를 실제 고부담 국가의 환자와 의료환경에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문제의식이다.
임상시험 269건 중 중국 단독시험 162건
연구진은 2025년 11월 19일 미국 임상시험 등록사이트 '클리니컬트라이얼스(ClinicalTrials.gov)'에서 자궁경부암 치료를 평가한 임상시험을 검색했다.
분석 대상은 2014년 1월 1일부터 2025년 12월 31일까지 시작된 성인 대상 2상·3상 중재 임상시험이다. 자궁경부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최소 1곳 이상의 시험기관이 기재된 연구를 선별했다.
검색된 임상시험 390건 가운데 269건이 최종 분석에 포함됐다. 2상시험은 168건으로 62.5%, 3상시험은 65건으로 24.2%였다.
전체의 88.8%인 239건은 한 국가에서만 시행됐다. 이 가운데 중국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이 162건으로 단일국가 시험의 67.8%를 차지했고, 미국은 35건으로 14.6%였다.
치료 유형별로는 전신치료가 155건(57.6%)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복합치료 70건(26.0%), 백신 18건(6.7%), 방사선치료 12건(4.5%) 순이었다.
고부담국 임상시험 대표성, 저부담국의 4분의 1
연구진은 각 국가의 임상시험 참여 건수를 여성 10만 명당 자궁경부암 연령표준화발생률(ASIR)로 나눈 '임상시험·ASIR 비율'을 산출했다.
이 비율은 자궁경부암 질병 부담에 비해 해당 국가가 임상시험에 얼마나 많이 참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연구진은 세계 평균 자궁경부암 발생률인 여성 10만 명당 14.1명을 넘는 국가를 고부담국으로 분류했다.
분석 결과 저부담국의 임상시험·ASIR 비율 중앙값은 0.53이었지만, 고부담국은 0.13에 그쳤다. 자궁경부암 부담이 높은 국가의 임상시험 대표성이 저부담국의 약 4분의 1 수준에 머문 것이다. 두 집단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했다(P<0.001).
연구진이 중국을 극단값으로 보고 제외한 민감도 분석에서도 질병 부담과 국가 소득 수준에 따른 임상시험 대표성 격차는 유지됐다. 특정 국가 하나가 전체 결과를 왜곡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고소득국 비율 0.53…저소득국은 0.02
국가 소득 수준에 따른 격차도 뚜렷했다.
임상시험·ASIR 비율 중앙값은 저소득국 0.02, 중하위소득국 0.14, 중상위소득국 0.29, 고소득국 0.53으로 나타났다.
고소득국의 비율은 저소득국보다 약 26배 높았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자궁경부암 질병 부담에 비해 임상시험 참여가 활발한 경향을 보인 것이다.
대표적으로 말라위는 여성 10만 명당 자궁경부암 발생률이 70.9명에 달했지만 참여 임상시험은 1건에 불과했다. 우간다도 발생률 53.8명에 임상시험 1건, 짐바브웨는 발생률 68.2명에 임상시험 3건이었다.
세 국가의 임상시험·ASIR 비율은 반올림하면 모두 0.0에 가까웠다.
반면 미국은 발생률이 여성 10만 명당 6.3명으로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57건의 임상시험에 참여해 비율이 9.0이었다. 중국은 발생률 13.8명에 임상시험 168건으로 비율이 12.2에 달했다.
한국은 발생률 8.6명에 임상시험 20건이 진행돼 임상시험·ASIR 비율이 2.3으로 집계됐다.
"환자 많은 국가에서 치료 근거 생산해야"
연구진은 자궁경부암 치료의 잠재적 효과가 가장 큰 저소득·중간소득 국가들이 임상시험에서는 충분히 대표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부담 국가의 제한된 암 진료 인프라와 연구 수행 역량, 전문인력 및 연구비 부족 등이 임상시험 불균형을 초래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꼽혔다.
연구진은 국가 간 공동 임상시험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의 연구 인프라와 임상시험 수행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임상시험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자궁경부암 부담이 높은 국가를 우선 고려해야 연구 결과의 일반화 가능성을 높이고, 실제 환자가 집중된 지역의 의료 수요에 맞는 근거를 생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ClinicalTrials.gov에 등록된 임상시험만 분석해 다른 국가 등록시스템에 등재된 연구가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 임상시험별 환자 수와 실제 모집 실적도 반영하지 않았으며, 등록된 시험기관이 실제 환자의 임상시험 접근성이나 참여를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진은 "자궁경부암 부담이 가장 큰 저소득·중간소득 국가들이 근거 생산 과정에서는 여전히 충분히 대표되지 못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