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면역 체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면역 활성과 억제 사이의 정교한 평형이 유지될 때 우리 몸은 건강을 유지하지만, 이 저울의 추가 어느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는 순간 우리는 질병과 마주하게 된다. 한쪽 끝에는 '암'이, 반대쪽 끝에는 '자가면역질환'이 자리 잡고 있다.[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인간의 면역 체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면역 활성과 억제 사이의 정교한 평형이 유지될 때 우리 몸은 건강을 유지하지만, 이 저울의 추가 어느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는 순간 우리는 질병과 마주하게 된다. 한쪽 끝에는 '암'이, 반대쪽 끝에는 '자가면역질환'이 자리 잡고 있다.
◇ 면역 항상성, 정교한 '면역의 저울'
인간의 면역 체계는 건강한 세포와 외부 위협 요소를 정밀하게 식별해 후자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한다. 이를 의학적으로는 '면역 항상성(Immune Homeostasis)'이라 부른다. 암과 자가면역질환은 이 항상성이 무너졌을 때 발생하는 체계 붕괴의 결과물이다.
먼저 암은 면역 체계가 너무 '조용할 때' 발생한다. 본래 신체의 일부였던 세포가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암세포로 변하면, 이들은 면역 감시망에 '거짓 신호'를 보내거나 자신을 숨겨 공격을 회피한다. 즉, 면역의 브레이크가 너무 강하게 걸려 악성 세포를 방치하게 되는 꼴이다.
반대로 자가면역질환은 면역 체계가 과도하게 '예민할 때' 나타난다. 면역 세포가 아군인 건강한 조직을 적군으로 오인해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가속 페달처럼, 멈춰야 할 곳을 지나쳐 자신의 몸을 파괴하는 것이다.
◇ 딜레마 속에서 찾은 치료의 실마리
이러한 특성 때문에 면역 활성을 높여 암을 공격하려 하면 자가면역 반응이 일어날 위험이 생기고, 반대로 면역을 억제해 자가면역질환을 고치려 하면 암세포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 아슬아슬한 경계선은 치료제 개발의 핵심이기도 하다. 폴란드 그단스크 의과대학교의 유스티나 사코프스카(Justyna Sakowska) 박사 연구팀은 2022년 발표한 연구에서 자가면역질환과 암이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을 기준으로 정반대 지점에 위치한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한쪽 영역의 연구 성과가 다른 쪽의 치료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며, 두 질환에 대한 통합적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같은 단백질, 다른 처방… 시장의 패권을 바꾸다
이러한 원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글로벌 제약사 BMS의 치료제들이다. 똑같이 T세포의 단백질인 'CTLA-4'를 타깃으로 하지만 작용 방식은 정반대다.
면역항암제인 '여보이'는 T세포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CTLA-4를 차단해 면역 세포가 암세포를 거세게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반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오렌시아'는 거꾸로 CTLA-4에 작용해 과도해진 면역 반응을 가라앉힌다. 같은 타깃을 조절하는 기술이 누군가에게는 암 치료제로, 누군가에게는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로 쓰이는 셈이다.
면역의 평형을 조절하는 기술은 어느덧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거대한 축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매출 1위 기록을 보면 흐름이 명확하다. 오랜 기간 정상을 차지했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면역의 빗장을 풀어 암을 잡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는 인류의 의학 기술이 면역의 시소를 정밀하게 조정하는 '면역 조절의 시대'로 완전히 진입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