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자경제] 이동윤 기자 = HBM으로 AI 메모리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온 SK하이닉스가 이제 '풀 스택 AI 메모리 크리에이터'를 내걸고 다음 도약을 준비한다.
AI 에이전트 확산으로 컴퓨팅 구조와 메모리 수요가 빠르게 달라지는 가운데 개별 메모리 제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넘어 AI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고 고객·파트너와 함께 설계하는 기업으로 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8일 이천캠퍼스 수펙스센터(SUPEX Center)에서 "AI 시대 Golden Time, AI Memory Solution Creator가 세상을 바꾸는 지금"을 주제로 '2026 SK하이닉스 미래포럼'을 열고 AI 전환(AX)이 바꿀 업무 환경과 차세대 메모리 기술·사업 방향을 논의했다.
미래포럼은 급변하는 AI 시대에 SK하이닉스가 나아갈 방향을 정의하고 구성원의 통찰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2024년 AI 기술의 선제적 탐색, 2025년 AI 밸류체인 차원의 혁신에 이어 올해는 AI로 일과 환경이 달라지고 사업과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메모리 시장은 이제 곡선도로"...곽노정이 강조한 Outside-in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메모리 산업을 둘러싼 경쟁 환경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관점을 '밖에서 안으로(Outside-in)' 전환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고객과 파트너의 시선에서 다시 바라보고 AI 생태계 변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곽 사장은 과거 메모리 시장을 누가 더 빠르게 달리는지를 겨루는 '직선도로'에 비유했다. 반면 현재 시장은 시시각각 환경이 변하는 '곡선도로'와 같다고 진단했다. 기업 내부의 기술 역량뿐 아니라 외부 환경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파악하고 이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첫 번째 화두는 AI가 사람의 일과 제조 현장을 어떻게 바꾸느냐였다. 앤트로픽 타리크 시히파르 제품총괄은 '클로드(Claude)' 실사용 데이터를 토대로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AI에 무엇을 맡겨야 하는지, 결과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회로 시뮬레이션과 전력량 측정, 시스템 최적화 등에 AI를 활용하는 '소프트웨어 공장(Software Factory)' 구축 가능성을 제시했다. AI 에이전트가 로봇 등 하드웨어와 연결되면 제조 현장으로 활용 범위가 확대되고, 반복적이며 검증 가능한 업무는 AI가 담당하는 대신 사람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전문적인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송길영 작가는 AI 시대에는 개인의 업무 속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과 시스템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재욱 SK하이닉스 부사장 역시 "AI는 협업 대상이자 또 다른 구성원"이라고 규정하며 사람이 판단과 의사결정에 집중하는 업무 환경을 제시했다.
SK하이닉스는 양산 현장의 표준업무절차(SOP)를 토대로 AI와 함께 일하는 업무 체계를 재설계하고 있다. 공정·설비 데이터의 의미와 연관성을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기반을 구축해 라인에 이상이 발생하면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원인과 대응책을 제시하며 사람이 최종 판단하는 구조다. '가이아(GaiA)' 플랫폼과 안전 감독 로봇, 고소 작업용 VLM 드론 등도 제조 현장에 활용하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바꾼 메모리...'범용 제품' 넘어 시스템 설계로
AI 자체가 진화하면서 메모리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두 번째 주제발표에서는 서울대학교 윤성로 교수와 하이퍼엑셀 김주영 대표, SK하이닉스 임의철 부사장이 'AI 시대가 요구하는 Memory Solution "Beyond Commodity"'를 주제로 차세대 메모리 구조를 논의했다.
윤성로 교수는 AI가 입력에 반응하는 형태에서 스스로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에이전틱 AI로 진화하면서 AI가 기억하고 관리해야 하는 대화 맥락과 작업 진행 상황, 중간 결과 등의 상태 정보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장해야 할 정보의 수명과 접근 특성까지 다양해지면서 하나의 범용 메모리만으로 모든 AI 워크로드를 처리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김주영 대표는 멀티 에이전트와 장기 실행이 확대될수록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에서 새로운 병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HBM과 DRAM, CXL, SSD 및 새로운 메모리 계층을 워크로드에 맞게 활용하고 다양한 가속기와 함께 시스템 차원에서 최적화해야 AI 인프라의 성능과 총소유비용(TCO)을 함께 개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가 제시한 해법은 '풀 스택 AI 메모리'다. 임의철 부사장은 3D Stacked DRAM과 HBM, HBF 등 다양한 메모리를 AI 워크로드 특성에 따라 조합하고 AI 서비스·소프트웨어·가속기 기업 등 생태계 파트너와 '시스템 레벨 공동 설계(System-level Co-design)'를 추진하는 전략을 소개했다.
궁극적으로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디바이스를 공급하는 기업이라는 기존 역할을 넘어 AI 시스템을 이해하고 고객·파트너와 함께 최적의 시스템을 설계하는 '풀 스택 AI 메모리 크리에이터'로 진화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HBM 다음은 3D...메모리와 로직의 경계 허문다
차세대 메모리 기술의 또 다른 핵심 축으로는 '3D'가 제시됐다. 고려대학교 신창환 교수와 SK하이닉스 김경훈·손호영 부사장은 3D 기술이 단순히 칩을 수직으로 쌓는 개념을 넘어 메모리와 로직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자 미세화가 물리적 한계에 가까워지고 시스템과 메모리 사이에서 데이터를 이동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전력 부담이 커지면서 3D 구조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신 교수는 소재와 소자, 패키징, 아키텍처 등 네 영역을 AI로 연결하는 3D 통합 설계 프레임워크를 제안했다.
SK하이닉스는 3D 기술을 소자 집적과 이종 집적으로 구분하고 데이터 버스 대역폭 극대화, 초단거리 전송, D램 주변회로의 로직 파운드리 활용 등을 주요 기술 방향으로 제시했다. 이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려면 설계뿐 아니라 발열, 미세 인터커넥트, 본딩, 공정 통합 등 패키징 분야의 난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손호영 부사장은 "3D 기술은 팹과 패키징의 기술 경계까지 바꾸고 있다"며 "어드밴스드 패키지 기술 혁신과 함께 기존 영역을 넘어선 공동 최적화와 새로운 협업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패널 토의에서는 블루닷AI 강정수 연구센터장과 TSMC 에이프릴 리 AI·HPC 사업개발 총괄, 리벨리온 박성현 대표, 하이퍼엑셀 김주영 대표, 스퀴즈비츠 김형준 대표 등이 참여해 현재 메모리 호황이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 다음 시장을 열 메모리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포럼 자체에도 AI 기술이 대거 활용됐다. AI로 제작한 아젠다 소개 영상을 상영하고 해외 연사와 실시간 소통을 위해 AI 통역 자막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행사장에서 보조 사회자로 참여했다.
SKHU 김형수 총장은 "우리가 HBM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반도체 기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메모리 설루션을 만들어 내는 힘은 여기 계신 여러분들의 호기심과 창의력"이라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미래포럼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구성원 학습 콘텐츠로 재가공해 사내에 공유하고 각 조직의 과제와 연결할 예정이다. AI 시대의 변화 속에서 HBM 이후의 새로운 메모리 시장을 발굴하고 '풀 스택 AI 메모리 크리에이터'로 도약하기 위한 실행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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