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국내 제약산업이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웠다. 한미약품이 개발한 비만치료제 '에페(성분명 에페글레나타이드)'가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를 받았다. 국내 기업이 자체 기술로 개발한 첫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치료제이자 대한민국 45번째 국산 신약이다.
이번 성과가 값진 이유는 다름 아니다. 한미약품은 2015년 에페글레나타이드를 프랑스 사노피에 기술수출했다. 그러나 사노피가 사업전략을 변경하면서 2020년 개발 권리가 반환됐다. 당시 국내 제약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던 기술수출 계약의 좌절이 6년 만에 신약 허가라는 더 큰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신약개발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치는 긴 여정이다.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했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권리가 반환됐다고 후보물질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축적된 연구자료를 활용해 새로운 개발 방향을 찾는 일이다.
한미약품은 에페의 개발 방향을 당뇨병 치료제에서 비만치료제로 전환하고 새로운 임상에 착수했다.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한국인 비만 환자 448명이 참여한 임상 3상에서 40주 투여 후 평균 9.75%의 체중 감소율을 확인했다. 체중이 5% 이상 감소한 환자는 79.42%, 10% 이상 감소한 비율은 49.46%, 15% 이상 감소는 19.86%에 달했다. 해외에서 약 60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축적한 글로벌 임상 경험을 국내 연구개발 역량으로 연결한 결과다.
무엇보다 이번 승인은 환자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희소식이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가 주도해온 국내 GLP-1 비만치료제 시장에 국산 신약이 참전한다는 자체부터가 가슴 벅찬 일이다. 환자와 의료진의 치료 선택지가 넓어지고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외산 비만치료제 복용에 따른 약값 부담은 한층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은 이미 합리적인 가격을 통해 환자의 치료 진입 장벽을 낮추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국산 신약이 탄생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이점은 가격이나 접근성 뿐만이 아니다. 공급 불안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에페는 원료 제조부터 완제품까지 한미약품 평택 바이오플랜트에서 자체 생산한다. 안정적인 국내 공급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비만치료제는 지속적인 투약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큰 만큼 실제 판매가격은 향후 경쟁력을 판단하는 첫 번째 시험무대가 될 전망이다.
한미약품은 '에페의 서사'를 이쯤에서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한미는 에페를 단순한 체중 감량 치료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내 제약사 최초로 디지털의료기기를 결합한 디지털융합의약품으로도 개발하고 있다. 이는 투약 이후 환자의 운동 수행 능력 향상과 식단, 생활습관 개선을 돕는 통합치료 플랫폼(TLS, Total Lifestyle care)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한미약품 임주현 부회장의 말을 빌자면 "에페는 한미의 혼이 담긴 프로젝트이자 성공과 좌절을 모두 지켜낸 상징"이다. 숱한 시련 끝에 탄생한 에페가 향후 어떤 모습의 서사를 더해갈지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