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과거에는 치료제 부재로 인해 질환의 진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분야에서도 RNA 기반 치료제, 유전자치료제, 세포치료제 등 혁신 기술을 적용한 신약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각국의 규제당국 역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 신속심사와 혁신 의약품 지원 제도를 확대하며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이 올해 1월 발간한 'Advancing Health Through Innovation: New Drug Therapy Approvals 2025' 보고서에 따르면, FDA 산하 약물평가연구센터(CDER)는 지난해 총 46개의 신약을 승인했다. 이 가운데 23개(50%)가 희귀의약품(Orphan Drug)으로 지정됐다. 신약 승인 2건 중 1건이 희귀질환 치료제였다는 것은 희귀·난치질환 영역이 더 이상 신약 개발의 주변부가 아니라 글로벌 혁신 경쟁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에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2025년 인간용 의약품 104개에 대해 판매허가를 권고했으며, 이 가운데 16개는 희귀질환 치료제였다. 특히 EMA는 유럽연합(EU) 희귀의약품 규정 시행 25주년을 맞아 해당 제도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과 환자 치료 기회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조건부 허가와 같은 제도 역시 치료 대안이 부족한 환자들에게 보다 빠른 치료 접근 기회를 제공하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희귀신약 도입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트랜스티레틴(TTR) 가족성 아밀로이드성 다발신경병증(ATTRv-PN) 치료제 '와이누아오토인젝터주45mg(에플론테르센나트륨·Eplontersen Sodium)'을 허가했다. 이 약물은 아이오니스 파마슈티컬스(Ionis Pharmaceuticals)와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가 공동 개발한 리간드 결합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LICA) 치료제로, 간세포 내 트랜스티레틴(TTR) 단백질 생성을 억제하는 새로운 기전의 RNA 표적 치료제다.
하지만 환자들은 여전히 치료제 접근성 측면에서 갈증을 느낀다. 신약 허가가 곧바로 환자의 치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약품은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은 이후에도 건강보험 급여 등재, 약가 협상, 급여 기준 설정, 의료기관 공급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특히 희귀질환 치료제는 환자 수가 적고 개발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특성상 높은 약가가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치료 효과가 입증된 혁신 신약이라 하더라도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비용 부담과 보험 보장성 문제로 인해 환자가 적기에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규제당국의 신속심사 제도와 조기 접근 프로그램은 치료 대안이 부족한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공한다. 다만 조건부 허가처럼 제한된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먼저 환자에게 공급되는 치료제는 실제 사용 과정에서 장기적인 안전성과 효과성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체계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빠른 치료 접근과 철저한 검증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균형 있게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희귀질환 정책의 핵심은 환자가 실제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허가 이후 약물이 환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전 과정에 대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희귀질환 치료제의 특성을 반영한 합리적인 급여 평가 체계를 더욱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제한된 환자 수와 임상 데이터의 한계를 고려하면서도 혁신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는 유연한 평가 방식이 요구된다.
둘째, 신약 허가 이후 실제 환자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리얼월드데이터(RWD)를 활용하면 초기 임상시험에서 확인하기 어려웠던 치료 효과와 부작용 정보를 축적하면서 보다 합리적인 급여와 사용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셋째, 희귀질환은 치료제만으로 해결되는 영역이 아닌 만큼 조기 진단 체계와 전문 의료 인프라 확충도 병행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치료제가 개발돼도 환자가 자신의 질환을 정확히 진단받지 못한다면 혁신의 혜택은 환자에게 도달하기 어렵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증가는 분명 인류 의학 발전의 중요한 성과다. 그러나 혁신의 가치는 규제기관의 승인 숫자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기다리던 환자가 실제로 약을 투여받고 삶의 변화를 경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