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환자 중심 의료는 오래전부터 의료계의 중요한 화두였지만, 실제 진료 현장에서 얼마나 구현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특히 만성질환처럼 치료 방법을 환자 스스로 이해하고 선택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의료진의 설명과 환자의 참여가 치료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환자중심의료기술최적화연구사업단(PACEN)이 6일 발표한 만성콩팥병 환자의 공유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 임상적 가치평가 결과는 이러한 환자 중심 의료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제 임상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말기신부전 환자들은 여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응급투석을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 응급투석 비율은 약 50%로 해외 선진국의 10~20%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응급투석은 계획된 투석보다 사망 위험이 약 7배 높다는 점에서 단순한 의료 이용 방식의 차원이 아니라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복막투석 선택률도 약 5%에 머물러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분당서울대병원 김세중 교수 연구팀이 전국 19개 의료기관에서 만성콩팥병 환자 11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 공유의사결정에 참여한 환자의 응급투석 비율은 15.7%로 크게 감소했다. 복막투석 선택률도 기존 약 5%에서 17.6%로 3.5배 높아졌다. 의료진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가 자신의 가치와 생활환경 등을 고려해 치료법을 함께 선택하는 과정만으로도 임상 결과가 의미 있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공유의사결정의 의미는 단순히 환자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충분한 설명과 숙고를 거쳐 결정된 치료는 환자의 치료 순응도를 높이고,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이며, 의료진과 환자 간 신뢰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환자를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의 주체로 인정하는 의료문화가 정착될 때 의료의 질도 함께 향상될 수 있다.
물론 현실적인 과제도 적지 않다. 외래 진료 시간이 짧은 국내 의료환경에서는 의료진이 환자와 충분히 상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연구진 역시 의료진 교육과 환자용 의사결정 지원도구 개발, 상담수가 신설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공유의사결정이 일부 의료기관의 모범 사례에 머물지 않고 의료현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의료는 더 이상 의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환자가 따르는 시대가 아니다. 특히 평생 치료를 이어가야 하는 만성질환일수록 환자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은 치료 효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번 연구는 환자 참여가 의료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보여준 의미 있는 사례다. 환자 중심 의료를 말로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공유의사결정이 실제 진료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이제 우리 의료계가 풀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