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우열 기자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지역사회 모두가 깊이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다. 특히 보호받아야 할 장애인이 삶의 공간 안에서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로도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그런데 최근 사회복지법인 한길복지재단이 발표한 공식 입장문을 접한 시민들의 마음은 또 한 번 무거워지고 있다. 입장문 곳곳에서 읽히는 것은 피해자와 시민을 향한 절절한 사죄와 성찰보다 언론과 외부 비판을 향한 강한 경고와 방어의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시설 측이 사건 당시 직접 신고를 했고 이후 수사에 협조했다는 설명은 필요하다. 또한 모든 시설 구성원을 동일한 시선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역시 일면 타당하다. 현장에서 묵묵히 장애인을 돌봐온 종사자들의 헌신까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 시민들이 듣고 싶은 것은 '왜곡 보도에 법적 대응하겠다'는 경고가 아니다. 장애인 인권 보호를 위해 무엇을 놓쳤는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어떤 구조적 개혁을 할 것인지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구체적인 재발방지 대책이다.
입장문에는 '허위사실 유포', '악의적 프레임', '민형사상 대응' 같은 표현이 반복된다. 물론 사실과 다른 보도에는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러한 표현들이 전면에 배치되면서 시민들에게는 마치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는 압박처럼 비쳐지고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언론의 시각도 잘못됐다면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 시설 내 성폭력 사건과 같은 중대한 공익 사안에 대해 감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까지 침묵시켜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 사안은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니라 장애인 인권 보호 체계와 행정 대응 시스템 전반을 되돌아보게 만든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입장문이 결과적으로 피해자와 보호자, 그리고 지역사회의 상처를 보듬기보다 방어 논리에 더 무게가 실렸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법률적 해명보다 인간적인 책임의 언어를 원하고 있다.
진정한 신뢰 회복은 강경 대응 방침에서 나오지 않는다. 뼈를 깎는 반성과 투명한 개선 의지와 외부 감시까지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단순한 운영 공간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의 삶과 존엄 그리고 안전을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더 높은 윤리성과 더 무거운 책임이 요구된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지역사회의 분노는 시설 하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시는 장애인이 침묵 속에서 상처받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한 외침에 가깝다.
다소 늦은감은 있지만 한길복지재단이 정말 시민 앞에 고개 숙이고자 한다면 이제는 법적 경고문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와 운영 혁신을 담은 진심 어린 약속으로 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