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호 편집국장[헬스코리아뉴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생물보안법 서명은 단순한 법률 공포가 아니다. 이는 "바이오가 곧 안보다"라는 선언이며, 동시에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을 향한 노골적인 편 가르기다. 중국 기업을 정조준한 이 법안은 결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음 질문은 이미 던져졌다. "누가 미국의 공급망 안에 남을 것인가."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지금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중국만 배제하면 끝이라는 착각
일각에서는 이번 법안을 '중국 기업의 위기, 한국 기업의 반사이익'으로 해석한다. 위험한 낙관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중국의 대체재가 아니다. 정치·안보·기술적으로 신뢰 가능한 파트너다. 중국을 배제한 자리에 자동으로 한국이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을 외면한 계산이다.
미국의 기준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공급망에 중국 자본은 없는가."
"원료와 데이터는 완전히 추적 가능한가."
"위기 시 미국의 요구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주저 없이 "예"라고 답할 수 있는 한국 기업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중국 의존', 이제는 리스크다
그동안 한국 제약산업은 중국을 값싼 생산기지이자 효율적 파트너로 활용해 왔다. 원료의약품, 중간 공정, 임상 데이터까지 중국과의 연결고리는 깊다. 그러나 지정학이 산업을 압도하는 시대, 이 구조는 더 이상 비용 절감의 수단이 아니다. 명백한 리스크 자산이다.
미국 시장을 꿈꾸면서 동시에 중국 의존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양다리를 걸치는 전략이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가장 먼저 도태되는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전략을 말하고, 기업은 결단해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미국은 이미 방향을 정했고, 법으로 못을 박았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영향을 지켜보자"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이 간극이 곧 경쟁력의 격차로 이어진다.
정부는 더 이상 선언적 지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미국·유럽과의 바이오 공급망 협력 로드맵, 탈중국 공급망 전환에 대한 정책적 뒷받침, 글로벌 규제 대응을 위한 외교적 조율 등,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 개별 기업의 노력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기업 역시 선택을 미뤄서는 안 된다. 미국 시장인가, 비용 절감인가. 단기 수익인가, 장기 생존인가를 결정해야한다.
회색지대에 머무는 시간은 끝났다.
◆'기술 없는 중립'은 없다
이번 생물보안법이 던지는 가장 냉정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기술력이 없는 중립은 보호받지 못한다.
CDMO, 바이오시밀러에 머무는 전략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이 끝까지 손을 잡는 파트너는 대체 불가능한 기술과 플랫폼을 가진 기업이다. 한국 제약산업이 진정한 기회를 잡으려면, 지금의 안전한 성공 모델을 스스로 흔들 각오가 필요하다.
선택을 미루는 순간, 선택지는 사라진다. 미국의 생물보안법은 단순한 경고장이 아니다. 최종 통보다. 칼날 위를 걷는 심정으로 지금 결단해야한다.